[현대물AU/티엔마틴] 첫 사랑이 있었다 1
첫 사랑이 있었다.
고백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흐지부지하게 넘어간 첫사랑이었다. 시기는 아마 고등학생 때. 그 애를 처음 본 건 고등학생 때가 아니었고, 중학생 때 이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은 학교를 나왔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는 영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첫사랑은 놀랍게도 남자였다. 동양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경계하던 학교에서 그 첫사랑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경계를 한다기보다는 다소 무관심한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그 첫사랑 상대에게 마음을 제대로 고백할 수 없었다. 고백하지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첫사랑 상대는 자신과 같은 남자였고, 동성이었고. 동성연애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렇게 사회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 때의 그 첫사랑이 종종 생각나고는 했다. 밝은 금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소년. 아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서로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게 되고, 조금 가까워진……그런 상대였다.
가끔 그 소년이 생각났다. 하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동창회 같은 건 나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자에겐 다른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소년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넘쳐났었지만.
어느 덧, 29살. 남자는 혼기를 꽉 채운 나이가 됐고, 주변에서는 어서 결혼을 하라고 성화였다. 잔소리는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남자도 어느 정도 그 말에는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래도 요 며칠 동안 그런 소리로 시작하는 전화와 업무 전화에 시달리고 있으려니 온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다, 뒷목을 주무르며 남자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결국 오늘도 피곤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쉬고 싶다. 남자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도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래, 분명 똑같은 일상의 연속으로, 퇴근길에는 피로 회복제나 커피나 한 잔 사마시며 겨우 허락된 주말에 집에서 어떤 식으로 휴일을 보낼지 그런 것을 생각하려 했다. 중간에 그 소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소년이 맞나. 첫사랑. 그래 첫사랑을 만났다. 우연히.
너무나도 우연한 만남이었다. 청년은 나이도 먹지 않은 것 마냥, 여전히 앳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보다도 더 마른 것 같았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첫사랑이 가만히 저를 응시할 뿐 이었다. 눈동자는 마치 유리구슬 같아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만 같다. 멍하니 저를 바라보던 시선에, 곧 정신이 돌아온 듯 그 눈이 크게 뜨였다.
“……티엔?”
“……어, 어.”
솔직히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해서 멍청이 같은 반응만이 튀어나왔다. 마틴 챌피. 티엔의 첫사랑이자 영영 소식을 알 수 없었을 것만 같았던 상대. 곧 마틴은 양 팔을 뻗으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는, 미래에서 왔어.”
“……뭐?”
어이없는 소리에 티엔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고는 오로지 저 반응 뿐 이었다. 티엔은 멍하니 마틴을 바라볼 뿐 이었고, 마틴은 그런 티엔을 향해 웃을 뿐 이었다. 눈도, 입도 완연히 웃고 있었다. “있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내일 하루만, 나한테 시간을 줄 수 없을까.” 마틴은 뒤이어 그렇게 덧붙였고, 티엔은 잠시 고민했다. 유일한 휴일이었다. 내일은. 그런 휴일을……….
티엔은 아주 잠시 고민했고, 그 고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길어지는 침묵에 마틴은 티엔을 바라보다 결국 어깨를 축 늘어트리다 곧장, 웃더니 “안 된다면 어쩔 수 없고.” 라고 덧 붙였다. 결국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티엔 쪽 이었다.
“……지금 당장도 괜찮아.”
* * *
근처 카페에 들어와서는 두 사람은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틴은 제 앞에 놓인 핫초코만 티스푼으로 저으며 그저 고개를 푹 숙고 있었을 뿐 이었다. 티엔은 그런 마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보다 미래에서 왔다니, 뜬금없는 소리는 뭐야?”
“음. 비밀……이 아니라, 농담. 농담. 여전히 농담이 안 먹히네.”
“……난 네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어서…….”
“궁금했어?”
“…….”
돌아온 마틴의 반문에 티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티엔이 턱을 당겨 고갯짓만 하더니 곧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말이야.” 라고 뒤늦게 대답했다. 그 말에 마틴은 가만히 티엔을 바라보다 곧 입을 열었다.
“지금 사귀는 사람은 있어?”
“없어.”
“좋아하는 사람은?”
“……딱히.”
두 번째 질문에는 마틴의 시선을 회피하며 티엔은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마틴에게 티엔은 반문했다.
“……그러는 너는.”
“나는……있었어. 그리고 아직도 좋아하는 거……같다고 생각해.”
“……자신이 없어 보이는 말투인데.”
“그야……, 상대방은 어떤지 모르겠거든. 항상, ……응. ……그래.”
마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웃어보였다. 어딘가 희미하게, 쓸쓸해 보이는 것만 같은 그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던 티엔은 잠깐 손을 뻗어 그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곧 그만두기로 했다. 곧 마틴이 다시 똑바로 티엔을 바라봤다. “……있지. 내일도 여기서 볼 수 있을까?” 마틴은 그렇게 티엔에게 물어보고는 한 번 크게 숨을 내뱉었다. “……주고 싶은 게 있어.” 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 날, 티엔이 약속 장소에 나갔을 때는 어제와 같이 같은 차림을 한 마틴이 있었다. 창가 근처의 자리에 앉아 있던 마틴은 곧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서는 티엔을 바라봤다. 티엔은 곧장 그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으며 “그래서. 주고 싶다는 건?” 이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마틴이 잠시 멍하니 티엔을 바라보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으며 대답했다.
“이따가 줄게. 뭐 하나만 들어주면.”
“……뭔데?”
“음. 같이 학교 가보지 않을래? 가고 싶었거든, ……쭉.”
……쭉. 티엔은 잠시 말없이 마틴을 바라봤다. 무언가 걸렸지만. 어딘가 느껴지는 위화감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거겠지. 그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그와는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티엔은 자신보다 걸음이 조금 느린, 마틴의 걸음에 맞춰 걸었다. 아마 학교에 가보자는 건 그냥 구실 같은 게 아닐까. 그냥 어렴풋이 그렇게 느껴졌다. 티엔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마틴을 바라봤지만, 마틴은 그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을 뿐 이었다. “……마틴, 너 말이다…….” 그런 마틴을 향해 티엔이 뭐라 말을 걸려는 찰나에 마틴이 티엔의 팔을 확 잡아끌며 외쳤다.
“오! 아이스크림 먹자!”
“어, 어이. 마틴, 잠깐 사람 말을 좀 들어……!”
“알았어, 알았어. 아이스크림 사주면.”
“…….”
마틴의 말에 티엔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쳐다보자 마틴이 큭큭 거리며 웃더니 “거 참, 속고만 살았어?” 라고 물었다. 곧 제 팔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마틴의 손을 풀어내고 티엔은 먼저 앞장 서 걸음을 옮겼다.
결국 티엔에게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얻어낸 마틴은 티엔에게 “고마워.”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곧 아이스크림을 티엔에게 내밀고는 “한 입 먹을래?” 라고 물었고, 티엔은 곧 손을 내저으며 “됐어.” 라고 대답했다.
“……아. 단 거 별로 안 좋아했었지?”
“……내가 그걸 말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자신을 바라보는 티엔의 시선에 마틴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더니 “나는 너에 대해 뭐든 알아.” 라고 말했다. 곧 그 말에 티엔의 어깨를 으쓱였다.
“너……도서관에도 자주 갔었지.”
“……어어. 너도 자주 있었지.”
“응.”
마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우물거렸다. “……너,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 그냥 한 말이지?” 티엔의 질문에 마틴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은 채로 고개를 들어 티엔을 바라봤다. 곧 아이스크림을 완전히 다 먹은 마틴은 망설임 없이 “응.” 이라고 대답했다. 마틴은 아주 잠시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아주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곧 걸음을 멈추고는 마틴은 몸을 돌려 티엔을 바라봤다. 곧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는 티엔에게 내밀었다.
“……시간 내줘서 고마워. 어제도, 오늘도. 이건 말이야……. 나중에, 나중에 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첫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지의 첫 말은 그렇게 시작했다. ‘고백은 하지도 못했어요. 할 수 없었거든요. 나는 자신도 없었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더욱 알 수 없었으니까요.’ 두 번째로 이어진 말도 그랬다. 깔끔한 글씨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더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졌거든요. 병명은 알 수 없었고, 나는 그대로 병원에서 거의 살았습니다.’ 티엔은 편지를 그렇게 전부 읽고는 곧 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첫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백은 하지도 못했어요, 할 수 없었거든요. 나는 자신도 없었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더욱 알 수 없었으니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더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졌거든요. 병명은 알 수 없었고, 나는 그대로 병원에서 거의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오래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만났습니다.
당신을 만났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당신을 좋아해요, 좋아했습니다.
고마워요, 티엔.
편지는 그렇게 끝났다. 티엔은 한 참 동안이나 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첫 사랑이 있었다. 고백도 하지 못했고, 결국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사랑인 줄 알았다. 그렇게 끝나버리고 만 사랑인 줄 알았었다. 마음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에 마틴 챌피가 티엔 정에게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아주 오랜 첫 사랑이었을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