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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5

[[]] 2014. 6. 17. 16:16




티셔츠를 들추고 나서 어깨의 상처를 살폈다. 손으로 어깨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살펴 만지다 곧 어깨 옷자락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그 이상한 것에 집중하던 단영이 고개를 든 것과 동시에 몸을 옆으로 피했다. 어느 순간 나타난 남자의 주먹이 벽에 박혀있었다. 단영은 밖의 소리에 잠시 집중했다. 밖이 조용하다.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들어 온 건가. 왜. 그렇게 생각했지만 단영은 곧 생각을 지우고는 남자의 다음 공격에 대응해야만 했다. 남자의 손이 목을 향해서 날아 들어오고, 단영이 남자의 손을 쳐내고는 그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남자의 몸이 사라지더니, 곧 단영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순간 바닥으로 쓰러질 뻔 했던 몸을 겨우 지탱하고 단영이 옆으로 구름과 동시에 원래 자리에 남자의 킥이 들어섰다. 어깨가 쓰라려왔지만, 그런 고통을 신경 쓸 여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남자가 단영을 향해 다시 한 번 목을 노려 팔을 뻗었고 단영이 남자의 팔을 잡았다. 


<확보했나.>

“아직.”


남자는 제게 온 무전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단영을 바라봤다. 온통 검은 눈이었다. 남자가 기묘한 느낌이 나는 눈동자를 한 채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제 팔을 잡은 단영의 팔을 뿌리쳤다. <둘을 잡았다. 한 놈이라도 더 얼른 잡아와.> 다시 들어온 무전에 남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다시 모습을 감추더니 곧 단영의 등 뒤에서 나타나서는 단영의 어깨를 노려 주먹으로 밀쳐냈다. 단영이 중심을 잃고 바닥 쪽으로 쓰러질 뻔 하면서 고개를 돌려 남자를 돌아봤다. 곧 둘 사이 공중에 불길이 가로 막았고 남자가 팔을 뻗다 타오르는 불길에 팔을 거두곤 잠시 단영을 노려봤다. 그 틈을 타 단영이 남자의 다리를  걸기 위해 밑에서 발을 걸었고, 남자는 순간 휘청 이는가 싶더니 곧 모습이 사라졌다. 


단영이 재빨리 등을 돌리자,  곧 그 앞에 남자가 팔을 뻗은 채 나타나더니 단영의 목을 잡으며 벽으로 몰아붙였다. 벽에 등을 강하게 부딪친 단영이 순간 인상을 찡그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뻗어 남자의 한 쪽 얼굴을 짓눌렀다.  짓눌린 얼굴로 불꽃이 타오르면 피부가 타들어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자는 얼굴 반쪽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단영의 목을 짓눌렀다. 단영이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남자의 얼굴을 더욱 짓눌렀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단영은 그대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단영의 몸에 힘이 풀리는 걸 확인한 남자가 그대로 단영의 목에서 손을 빼고는 등을 돌렸다. 벽을 타고 단영이 그대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남자는 단영을 마지막까지 흘겨보며 확인하더니 곧 완전히 등을 돌렸다. 


단영은 눈을 흘겨 뜨고 남자의 등을 완전히 확인하고는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휘청거린 몸을 최대한 이를 악물며 버티면서 남자의 등을 팔로 누르면서 순식간에 그 머리 위로 올라타서는 남자의 몸을 바닥으로 짐짝 던지 듯 내던졌다. 남자의 몸 위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는 불타면서도 팔을 단영 쪽으로 뻗으며 몸을 일으켰지만 단영은 뒷걸음질 쳤다. 헉, 헉. 숨을 고르면서 단영이 남자에게서 점점 더 멀어졌다. 그리고 곧 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단영이 몸을 급하게 돌려서는 등 뒤에서 나타난 상대의 발을 밟고는 목 근처를 노려 주먹을 날렸다. 상대가 단영을 노려봤지만 단영은 개의치 않고 상대의 복부를 가격하고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복도를 빠져나오자 아까와 같은 연기가 임시 본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단영이 팔로 제 입과 코를 막으며 뒷걸음질 쳤다. 바닥에 늘어진 사람들. 단영이 몸을 돌려 뛰어왔던 복도를 통해 돌아가려고 했지만 순간 옆구리를 강타하는 찌릿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단영이 몸의 균형을 최대한 잡으면서 상대방의 팔을 붙잡았다. 상대의 팔을 붙잡은 채, 단영이 고개를 들고 상대를 노려봤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답답한 느낌과 함께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영은 겨우 정신을 차려서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을 확인했다. 발밑으로는 물이 있었고, 단영은 불투명한 큰 수조 같은 곳에 갇혀 있었다. 아. 최악이군. 단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중간의 기억이 끊겨있었다. 아무리 되새겨보아도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단영이 그런 생각을 끝냄과 동시에 머리와 발밑에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단영은 하하, 하…….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웃던 단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물은 빠르게 차올라서 이미 조금 있으면 무릎이 잠길 터였다. 단영은 유리 수조의 유리를 강하게 발로 찼다. 오러는 담지 않았다. 물론 아무 미동도 없었다. 물은 점점 차올랐고, 단영은 몇 번인가 더 유리를 발로 찼지만 부질없는 짓 이었다.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을 때 단영은 아까보다 더 크게 웃었다. 아니, 우는 것도 같았다. 단영이 주먹으로 유리창을 세게 치고는 곧 유리창에 제 이마를 댔다. 


“……에이든…….” 


단영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러를 담아서 쳐볼까 했지만, 지금은 오러를 쓰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게 그거 일 수도 있으니까. 물소리는 점점 숨을 죄여오듯, 빠르게 차올랐다. ……물론 그 전에, 지금 상태로 오러를 쓸 수 있을지 그것부터 의문이지만. 단영이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상대방의 팔을 잡고, 그대로 공격하려고 했는데. 


……일단 나가야 돼. 단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있는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딱 한 사람이 보고 싶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너무 지쳤어, 에이든…….”


죽으면 안 돼. 언젠가 그렇게 말했던 그의 목소리가 머리를 뱅뱅 도는 것만 같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단영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단영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를 똑바로 응시하더니 곧 무슨 생각을 정리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계속 쏟아지는 물줄기는 멈추지 않았다. 나가서 다시 확인을……. 물은 곧 있으면 바로 턱 밑까지 올 터였다. 단영은 순식간에 숨을 들이마셨다. 물은 곧 단영의 몸을 완전히 잠식했다. 몸이 전부 물에 잠기자 물은 더 나오지 않았다. 단영은 물속에 잠긴 채로 몸을 유리에 완전히 붙였다. 오러를 쓰고, 안 쓰고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일단은 나가야 돼. 오러가 나오지 않는다면, 꼼짝없이 익사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리창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단영의 몸과 물도 함께 쏟아져 내렸다. 유리창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 조각났다. 단영은 물에 떠밀려 나오면서 몸을 최대한 돌리려 애썼다. 갑자기 트인 숨에 계속 기침을 하며 어떻게든 몸을 추슬렀다. 물속에서 나오니 찾아 드는 한기에 제 몸을 감싸고는 단영은 미친 사람 마냥 소리 내며 웃었다. 열기가 온 몸을 잠식하는 것만 같았다. 꽤 많았던 물은 뜨거운 열기와 함께 증발에 수증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열기도 잠시, 순식간에 한기가 찾아왔다. 단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곳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저 차가운 공기만이 계속 들어오고, 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주변을 확인 한 단영이 몸을 일으키고 발이 땅에 닿아 있다는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눈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방금까지 없던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단영은 이 얼굴을 기억했다. 여기로 잡혀오기 전 마지막 기억에서 나타난 상대였으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무리 하지 마. 이렇게 굴면 더 힘들어질 뿐 이야. 잘 알잖아.」


잘 알고 있는 얼굴과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해댔다. 단영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단영을 공격하지 않았다. “나 말고 더 있어?” 단조로운 목소리로 단영이 물었다. 상대는 매우 많이. 라고 대답했다. 상대가 다시 단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상대의 얼굴을 보자 단영은 또 헛웃음이 터져 나와서 제 이마를 짚은 채로 어이없음에 그저 웃음을 흘렸다. 단영아. 상대가 제 이름을 불렀다. 단영은 그저 그렇게 소리 내며 웃더니 곧 망설임 없이 상대의 머리를 갈기고는 목과 팔을 잡아 그 몸을 제압했다. 


“우리 형은 죽었어.”


그제야 상대방의 얼굴이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자신이 얼굴 반쪽을 불태웠던 상대의 얼굴로. 남자의 잡힌 목과 팔에 또 타들어가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단영은 망설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연기였어.” 단영은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로 그렇게 말했을 뿐 이었다. 형이 살아 있을 리가 없다. 눈앞에서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시체도 확인하고. 이 손으로 그가 가루가 되는 걸 보고……. 단영이 남자를 손에서 놓고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에이든. 또 다시 그 이름을 되새겼다. 온 몸에 더 한기가 돌았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얼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단영이 겨우 쥐어짜낸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뭘 원해도, 나는 답해주지 않을 거야.” 그렇게 덧붙이며 단영은 제 몸을 감쌌다. 


“……에이든.”


단영이 그 이름을 다시 중얼거렸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시야는 거기서 그렇게 닫혔다. 그를 생각함과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