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너스/로8b) 나타세하 소설트윈지 KEEP AWAY 수량조사 ( ~ 1/5)
수량조사 : http://me2.do/GZkPYj4Q
“짜증나, 짜증나, 짜증난다고!”
신경질 적인 외침과 함께 앞에 있던 깡통이 경쾌한 소릴 내며 포물선을 그렸다. 아마도 외친 이가 차버린 것이리라. 뒤에서 따라오던 동행인은 보지 않고도 들리는 소리로 대충 짐작하며 아쉬운 듯 손에 들린 게임기의 전원버튼을 내렸다.
“야, 애꿎은 깡통 날리지마. 그리고 버려진 깡통이 있으면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지금 그깟 깡통 걱정할 때야?! 이 버러지가!”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며 동행인은 결국 꺼진 게임기를 안쪽의 전용 포켓에 소중히 갈무리 해 넣고 있었다. 그것을 기가 막힌다는 듯이 쳐다보던 나타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애꿎은 땅만 차대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삐딱한 자세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아무리 트레이너의 명령이라지만 하필 제일 재수 없는 이세하와, 그것도 한 팀으로, 조금 더 짜증나는 차원종을 썰러 가는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나타를 이세하 역시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지만 크게 티내지 않고 묵묵히 나타를 따라오는 것조차 심기에 거슬릴 정도였다.
“미리 말해두는데 그 재수 없는 차원종을 썰고 나면 다음은 네녀석 차례니까! 목 잘 닦아두고 있으라고!”
“하아, 난 너랑 싸울 생각 없다니까 그러네.”
의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숨에 나타 역시 김이 팍 새버려 당장이라도 손에서 쿠크리를 놓아 버리고 싶었지만 마지막 남은 한 톨의 인내심으로 그것을 참아내고 있었다. 공기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살기가 점점 감각을 자극하고 있던 탓이었다.
영양가 없는 투덜거림이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가만 있는 것 만으로도 전해져오는 살기에 몸이 찌릿찌릿해져 왔다. 고취되어오는 고양감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장의 짜증을 해소하기 위한 고깃덩이들이 알아서 와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이세하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의욕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지우고 무기를 고쳐 잡고 있었다. 재수 없는 자식.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자신 못지 않은 힘을 낼 수 있는 녀석이 평소에는 게임지인지 뭔지 쬐끄만 판때기만 붙잡고 있으니 옆에서 보는 입장에선 복창이 터질 노릇이다. 팀원들도 같은 생각인 것인지 대장이라는 분홍머리가 자주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관찰 결과 옆에서 속 터져 하는 사람만 손해일뿐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나타는 다시 쿠크리를 그러쥐었다. 사냥감을 잘게 다져줄 생각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정신을 조종하건 뭐건 나타는 주어진 사냥감을 물어 뜯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나타의 할 일 이었다.
쿠크리가 빠르게 직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거리를 좀 두고 있다고 생각되는 찰나 쿠크리의 그림자를 따라 나타의 그림자가 빠르게 덧씌워졌다. 순식간에 뒤로 돌아간 나타의 발길질에 차원종이 비틀거리는 사이 나타의 위상력이 자비 없이 폭발하고 있었다. 하나를 베고 순식간에 셋을 더 베었다. 차원종의 비명이 들릴 때마다 웃음이 진해져 갔다. 그래, 그렇게 버러지처럼 소리 지르라고. 한결 기분이 나아진 나타가 쿠크리의 줄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전방의 차원종을 향해 칼을 던졌다. 동시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움닫기를 하며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춤추듯 공간을 갈랐다. 몰아치듯 쏟아지는 공격에 미처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 차원종들이 손 한번 휘두르지 못한 채 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대로 끝을 내줄 심상이였지만 초반에 힘을 너무 뺀 것인지 끌어모은 위상력이 조금 부족한 것이 느껴졌다. 쳇, 하고 혀를 차며 땅에 착지한 나타는 일단 뒤로 회피를 시도했다. 나타가 지나간 잔상 위로 푸른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불꽃의 근원지에는 이세하의 건블레이드가 땅에 꽂혀 있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잘 맞는 타이밍에 나타는 다시 한 번 혀를 쯧, 하며 이세하 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너 따위 버러지 도움이 없어도 이정도 쯤은 나 혼자 충분히 처리 할 수 있어!”
“동생 신경 쓰이나 봐.”
“……뜬금없이 무슨 소리에요?”
“왜. 거기에 나타라는 애 말이야. 그때, 같이 나갔었지?”
“……그게 임무였으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세하는 슬쩍 제이의 시선을 피했다. 제법 난처하다는 표정을 한 채로 제이의 시선을 피해가는 세하를 보며 제이는 조금 길게 한 숨을 내뱉었다. 세하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또 침묵이 이어졌고, 이번에는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곧, 누군가의 호출기가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고, 그 주인공은 슬비였다. 슬비는 익숙하게 호출을 받더니, 곧 금방 연락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모두 지금 당장 작전실로 모이라고 하네요.”
“……유정 누나야?”
“……응. 굉장히 급한 목소리셨어.”
슬비의 대답에 세하는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굉장히도.
다급한 호출에 급히 찾아간 작전실의 문을 연 순간, 유정이 테이블을 쾅 하고 내려치는 소리가 났다. 갑작스럽게 난 큰소리에 모두가 한 번 몸을 움찔거렸다. 언성이 높아지더니, 곧 유정은 얼마 안가 전화를 끊었다.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마구 헤집더니 길게 한숨을 내뱉은 그녀의 시선이 검은양팀을 향했다.
“그렇게 버럭, 버럭 소리 지르는 걸 보니까 무슨 엄청난 일이 생겼나봐, 유정씨.”
“……말도 마세요. 지금 온통 난리가 났으니까요. 다들 자리에 앉아 봐요. 긴급 임무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요.”
*
이야기의 시작은 공항에서부터였다. 아직까지 공항은 경계 주의보가 발령되어 있는 상태라 유니온의 주도 하에 특경대의 도움을 받아, 사태를 진정시켜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사태가 진정되어 가던 와중, 한 특경대원이 갑자기 같은 특경대원을 공격한 것 이었다. 같은 대원을 공격하는 그의 눈은 마친 정신이 나간 사람 마냥, 붉은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고 했다. 겨우겨우, 그 자리에 있었던 특경대원들의 힘으로 난리를 치던 특경대원을 기절 시켰지만, 그 뒤에 또 다른 특경대원이 날뛰고 말았다고 했다.
갑작스런 이상 행동들에 유니온 측에서는 공항 일대를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런 조사를 통해서 한 가지 사실에 도달하게 되었다. 공항 일대에 특수한 차원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한 위치나 개체 수는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캐롤리엘의 보고에 따르면 이 차원종은 사람의 심리나 감정을 장악하여 그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종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며, 자아를 잃게 돼서 타인의 말을 듣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고도. 본체는 어딘가에 숨어서 분신을 보내고, 그 분심을 통해서 사람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같다는 추측성 이야기들을 들으며 세하는 조금 삐딱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본체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았고, 대신 겨우겨우 본체가 있을 법한 위치를 세 군데 정도로 압축했다며 지도에 세 지점이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그리고, 이번 긴급 임무는……늑대개 팀과 같이 해줘야 할 것 같아.”
“……오히려 위험한 거 아니에요?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장악해서 조종한다면서요.”
“그야, 위험할거야.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상황을 알리고,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아니요, 누나. 제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라요.”
세하는 그렇게 말을 했다 곧 입을 다물었다. 잠시 손으로 제 입가를 막은 채로 침묵하더니 금방 손을 내리고는 휘휘 내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너무 걱정이 많아졌나 봐요.”
세하의 말에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의아스러운 눈으로 팀원들이나 유정이 그를 바라봤지만 세하는 대답 없이 그저 길게 한숨을 내뱉을 뿐 이었다.
“그럼 언니, 정확하게 어느 지점에서 늑대개의 팀원들과 함류를 해야 하는지, 임무를 하달해주세요.”
슬비의 말에 유정은 “아, 그래. 맞다. 우선은 세 조로 나누기로 그 쪽 트레이너씨와 이야기를 끝냈어. 그래서 나누는 건…….”
세하는 유정의 이야기를 듣다가, 곧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렸다. ……진짜 괜찮을까? 아니, 자기가 너무 걱정하는 걸까?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이 나왔다. 다른 이들의 의문스러운 시선을 뒤로 한 채, 세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가볍게 몸을 털었다.
“그럼, 저는 먼저 출발할게요.”
어째서인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안 좋을 거 같은 찜찜한 기분. 그래도 그런 기분을 뒤로 한 채로, 세하는 제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리고는 제 건블레이드를 챙겨서는 작전실을 빠져나왔다.
*
나타와는 이렇게 금방 만나, 다시 작전을 수행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삐딱하게 쪼그려 앉은 채로, 제 쿠크리를 손에서 휘휘 돌리고 있던 나타는 세하가 나타나자 “늦었잖아, 버러지.” 라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시비조의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제 시간에 왔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먼저 와 있었으니까, 넌 늦은 거야. 버러지.”
“그래, 그래. 내가 늦었다. 미안해.”
한 숨을 내뱉으며 세하는 허리에 손을 홀린 채로 나타를 바라봤다. 그런 세하의 말에 나타의 미간이 더욱 심하게 좁혀졌다. 잔뜩 인상을 구긴 채로 세하를 바라보며 나타는 곧 쿠크리의 끝을 세하의 턱 밑으로 들이 밀며 툭 말을 내뱉었다.
“난, 네 녀석의 그런 태도가 진짜 짜증이 나. 진짜, 그 꼰대의 말만 아니었어도 너랑 당장에라도 제대로 싸워보고 싶다고. 이런 시시한 임무 같은 거 말고!”
나타가 확 언성을 높이며, 발로 애먼 땅만 찼다. 그런 나타의 행동을 가만히 시선만 따라가서 바라보던 세하가 길게 한 숨을 내뱉었다.
“전에도 말했던 거 같은데, 난 너랑 별로 싸우고 싶지 않다니까.”
세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 어깨를 두드렸다. 가만히 나타를 바라보며 여전히 제 턱 밑으로 들이밀어져 있는 쿠크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일단은, 지금은 임무에 집중하자, 나타.”
“……네 녀석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거든? 대체 왜, 네 녀석이랑 또 같이 임무를 해야 하는 거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툭 말을 내뱉으며 그제야 쿠크리가 턱 밑에서 거둬졌다. 그 모습을 보며 세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손에 쥐고 있던 건 블레이드를 한 번 고쳐 쥐며 답했다.
“그런 걸 나한테 물어봤자, 내가 윗분들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 그보다, 전에 봤던 거랑 조금 복장이 다른 것 같아. 원래 그 옷이었어?”
“그 딴 건, 네 녀석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버러지.”
“아, 글쎄. 버러지가 아니라 이세하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