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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사이퍼즈 토막글 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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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4. 02:31
처음에 연합에 들어왔을 때 부터 그의 그런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조건 재미로만 보고, 흥미 위주로 행동하는 것.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재미있어 보이면 뛰어드는 태도. 애초에 그가 연합에 들어 온 이유도 자신의 형이 회사에 힘을 빌려주고 있기 때문에 형과는 반대로 들어가는 게 더 재밌을 거 같다는 시덥잖은 이유 때문 이었으니까. 그런 그의 재미위주, 흥미위주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긴 은색의 장발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게 묶은 척 봐도 놀기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을 지닌 사내는 막 검을 휘두로 검집에 검을 넣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재미난 것을 봤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장발 머리의 사내는 검을 다 넣고 뒤를 돌아 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어이, 토마토~ 위험하게스리.”
“토, 토마토 아니라고 했잖아! 이 바보 형이!”
“그보다 너 좀 위험했다? 방심하니까 그렇지~”
“아니거든! 그런 거 아니거든! 형 같은 바보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이길 수 있었거든!”
거 참 말 많네.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장발의 사내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씩, 씩 거리며 악을 부리다가 곧 대머리 독수리! 라고 외치자 뭐, 임마?! 라는 그의 반응이 바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일 기세로 노려 보다 조금 더 작은 체구의 소년같이 앳된 인상을 가진 청년이 소리쳤다.
“그러니까 토마토 라고 부르지 말라고! 난 토마스란 멀쩡한 이름이 있단 말이야, 이 바보형!”
“애정과 관심의 표현도 모르냐? 너야 말로 하늘 같은 형한테 바보가 뭐야 바보가?”
장발 머리의 사내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그 눈동자가 가득 불만을 담고 '토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다른 사람들 이었더라면 그런 사내의 눈빛에 몸을 떨었겠지만 토마스는 몸을 떨기는 커녕 오히려 고개를 더 치켜들고, 언성을 높이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을 뿐 이었다.
아무리 연합이 자유분방한 조직이라도 그렇지, 왜 이런 사람이 이런 조직에 들어와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토마스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너 루이스한테는 항상 선배, 선배 거리면서 나한텐 왜 그래?”
“내가 이글한테 까지 그렇게 부를 필요 없잖아!”
“…아앙?”
'이글'의 눈썹이 크게 한 번 꿈틀 거렸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토마스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이글의 눈빛에도 토마스는 여전히 내가 뭘! 뭘! 이라고 소리치면서 이글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며 소리쳤을 뿐 이었다. 그렇게 소리치는 토마스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이글의 시선이 곧 다른 곳을 향했다. 토마스는 그런 이글을 향해 소리치다, 이글의 시선이 일순 바뀐 것을 알아 내고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토마스가 하려는 말은 이글의 갑작스런 행동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해버렸다. 토마스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글의 팔이 토마스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던 토마스가 그런 이글의 행동에 힘없이 그의 품안으로 끌려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높은 음의 쇠소리가 났다.
가만히 그의 품에 끌려 온 채로 고개를 살짝 올려 이글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진 채 어느 새 뽑은 검의 시퍼런 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본 곳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방금 소리…? 뭔가 있던 거 아니었어?”
“…….”
“…저기요? 형? 이글형? 그렇게 진지한 표정 짓지 말아줄래?”
엄청…안, 안어울린다고….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리면서 토마스가 이글의 몸을 밀쳐내자 아까와는 다르게 금방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글은 곧 검을 다시 검집의 안에 집어 넣고서는 곧 토마스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그래, 그래 우리 토마토. 겁먹었구나?”
“…왜, 또…그렇게 되는건데…?”
“뭐야, 아니야?”
히죽거리면서 농담을 걸어오는 이글의 말에 아니야, 아니라고! 이 바보형! 이라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아까의 그런 표정과 전혀 다른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구는 그가 이상한 것도 있고, 어이 없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거 이전에 같은 남자임과 동시에 이런 사내한테 조금이라도 두근거렸던 자신이 부끄러운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완벽, 무결점.
그 단어들만으로도 그 사람을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항상 굳게 닫혀 있는 입. 잔뜩 찡그린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아무런 감정도 담겨져 있지 않은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 허리에 차고 있는 가문의 상징.그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그에겐 모두에게 있는 것이 모두 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다르게 돌려 말하자면 다른 이들에게 있는 약점 같은 건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태초부터, 처음부터 약점 같은 건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현재 연합과 회사는 임시적인 동맹과도 같은 형식을 취한 상태이지만, 만약에 회사와 연합이 다시 적이 된다면 그는 필시 제거해야 할 대상 1순위인 것은 분명하고 분명한 일이었다.
사내는 항상 살짝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표정에 그는 말수가 극단적으로 적었다. 항상 굳게 다문 입으로 검을 휘둘렀다. 필요에 의하면 검을 휘두르고, 방해물은 제거한다. 그의 눈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심한 상처는 아니었다. 그가 뽑았던 검을 다시 검집에 놓고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두고 있을 때, 그의 곁으로 누군가가 한명 조용히 다가왔다. 목 부분이 크고 넓은 군용코트를 입고 있는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총을 다시 장전하면서 가만히 아무 말 없는 다이무스를 향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몰려 있는 거 같기에 도와주려 했더니, 내 도움 같은 건 전혀 필요 없었구만? 다이무스군.”
“난 도와달라고 한 적은 없다. 슬로언.”
이야, 너무 차갑게 군다. ‘슬로언’ 이라고 불린 사내는 그리 말하면서 웃었지만 다이무스의 반응은 오지 않았다. 그런 그의 무심한 반응에 슬로언은 혀를 차며 과연 완벽하구만, 홀든가의 장남은. 중얼 거렸다. 새로 장전한 총을 허리 근처에 차고 있던 홀스터에 넣으면서 ‘슬로언’은 다이무스를 흘겨보았다. 정확하게는 흘겨본 것은 아니고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는 말이 옳겠지만.
“자네 말이야, 어디서 재미없단 소리 듣지 않나?”
“…그게 중요한 이야기 같지는 않군.”
“아니, 아니 중요해. 자네한테는 충분히 중요한 이야기 같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재미없게 살면 힘들다고. 인상 좀 풀어, 다이무스군.”
“그러는 자네는 너무 가벼운 것 같군.”
“자네보단 괜찮지.”
훨씬 괜찮지. 라고 덧붙이면서 ‘슬로언’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다이무스는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 …지금 시비 거는 건가? 라고 조용히 운을 뗐다. 그런 다이무스의 답에 ‘슬로언’은 그저 웃으면서 아니, 전혀. 라고 딱 잘라 대답했을 뿐 이었다.
‘다이무스 홀든’과 ‘웨슬리 슬로언’의 성격은 거의 정반대였다. 완벽과 무결점에 가까운 다이무스는 딱딱하기 그지없어서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지낸 반면, 웨슬리의 경우엔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원만했고 항상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 그의 그런 성격으로 그를 따르는 추종자가 많았던 것 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 그가 왜 다이무스에게 흥미를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그의 그런 완벽한 점에 이끌리고 있는 것 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에게 흥미가 있는 것 인지.
웨슬리 슬로언은 애초에 능력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회사나 연합에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가 이 전쟁에 왜 참여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어떠한 연도 없던 그가 회사 소속의 ‘다이무스 홀든’에게 이유 모를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으로 회사 측에서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닌지에 대한 관심이 돌려졌다.
“애초에 당신이 능력자들의 전쟁에 왜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낀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 솔직한 감상에 웨슬리는 제가 입고 있던 군용 코트를 더욱더 여몄다. 밤바람이 유난히도 찼다. 저 질문에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그를 알고 있었다. 연합의 스카우터, 통칭 ‘요기 라즈’. 사내는 자신을 별로 탐탁치 않아하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가 그걸 자네에게 대답해야 하는가?”
나를 스카우트 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런 식의 말은 참아주게.
그렇게 말하는 슬로언의 입가가 쓱, 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속을 잘 알 수 없는 그 미소에 ‘요기 라즈’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럼 홀든 가의 장남에 대한 관심은 대체 무엇 입니까.”
홀든 가의 장남? 아아, 그 항상 무표정한 사내를 말하는 건가. 다이무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웨슬리가 잠시 ‘요기 라즈’를 살피다 어둠으로 가득 찬 밤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글쎄, 무엇일까. 굳게 닫혀 있던 웨슬리의 입술이 겨우 열렸다.
“그는 재미있거든.”
젊은 영웅?
그런 호칭이 듣기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서 조금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은 ‘젊은 영웅’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 한편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은 그렇게 불려도 괜찮은 것 인가. 그건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생각보다 심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도 사소한 부분에서 그런 것이 나타나기 쉬웠다. 특히나, 친구보다도 더욱 각별한 사이에서는. 그런 부분을 숨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 아마도 그녀는 모든 걸 눈치 채고 있으리라.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소리 없이 전쟁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끝은 언제가 될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떤 장식도 없는 단조로운 방이었다. 그저 그런 단조로운 방에서 침대의 안에 누운 채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잠이라도 잔다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 같은 건 오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슬퍼졌다. 온통 모든 것이, 이런 것을 고민하는 자신이.
왜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한, 자신을 향한 끝이 보이지 않는 질책.
“…루이스.”
듣기에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조금 걱정이 담겨있는 그 목소리에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만 꾹 다물었다. 말을 토해내지 못했다. 그저 벙어리마냥, 입술만 벙긋거리다 다시 꾹 다물었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이내 곧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오는 그녀의 체온에 그저 평온함만을 느낀 채.
생각의 악몽 속에서 벗어나서 잠시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