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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본즈 / 성찰

[[]] 2016. 9. 2. 01:20

비욘드 네타 있어서 쿠션 많이 깝니다. 

대체 내가 뭘 쓴거지 (머리박음) 

































스타플릿 최초의 영웅. 아카데미에서는 그를 그렇게 배웠었다. USS 프랭클린은 실종되었고, 그의 대원들과 그 또한 실종되었다. 다만 그의 이름은, 그리고 그의 함선 또한 아카데미와 스타플릿에 영웅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제임스 T. 커크는 그렇게 배웠고, 그것은 제임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크롤, 아니 에디슨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몸으로 겨우 유리 통문에 몸을 기댄 채로 그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페이저건을 그에게 겨누면서도 제임스는 수 십, 수만의 생각을 했다. 눈이 마주쳤다. 페이저건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고, 눈이 똑바로 그를 마주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에디슨.” 망설임 끝에 그 이름을 덧붙이며 제임스는 여전히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가 웃는 소리가 났다. 제임스는 그를 눈에 계속 담았다. 그는 외쳤고, 외쳤다. 그건 깊은 분노. 분노보다 더욱 응어리진 감정. 변화를 인정해야해. 그러지 않으면 평생 싸움만 하면 살아가야 하니까. 에디슨과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그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 이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제임스는 그 눈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분노는 무엇으로 인한 걸까. 제임스는 문득 아까 보았던 그의 마지막 항해일지를 떠올렸다. 절망. 공포. 슬픔. 분노. 그 모든 것들. 마지막의 순간까지 에디슨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 끝에는 결국 복수만이 남았겠지. 


어쩌면 자신도 그 감정을 알 수도 있다고, 아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크롤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발타자르 에디슨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제임스도, 자신도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의 자신. 아무것도 찾지 못해, 헤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자신.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에디슨은 자신이 태어난 세계에는 평화 같은 건 없었다고 외쳤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결국 죽게 될 것 이라고. 제임스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온 몸이 땀과 피가 섞였다. 소매로 제 턱 주변과 눈가를 훔쳤다. 


“살생을 하며 사느니 생명을 살리고 죽겠어. 내가 태어난 세계는 그래.”


그 말을 했을 때, 크롤의 표정은 어땠었더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했었던가. 아무런 표정도 없었던가. 

어쩌면 그는 크롤이 되지 않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에디슨’이 아닌 ‘크롤’을 선택했다. 아마 그때의 그에게는 그것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분명. 


 




얼굴을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 전체가 거의 피 범벅이었다. 한 쪽 눈이 부어올랐는지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귀나, 머리도 조금 멍해서 자신의 눈앞에서 레너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겨웠다. 제임스는 얼굴 마냥 엉망이 된 손으로 부은 것 같은 눈을 누르면서 겨우 입을 뗐다. 


“본즈,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리고 부상 입은 대원들은?”

“요크타운은 무사해. 부상 입은 녀석들도 치료 중이고. 지금 네 녀석이 남을 걱정할 때야? 널 걱정해야지. 손 치워봐. 빌어먹을 짐. 내 말 제대로 알아듣고는 있어?”


제임스가 여전히 손으로 눈을 누른 채로 레너드를 바라봤다. 그가 한 숨을 내뱉는 것 같았다. “…아니구만.” 이라고 툭 말을 내뱉으며 그는 제임스의 손목을 잡아 끌어내렸다. “본즈, 나 머리가 울려.” 그 말에 레너드가 혀를 찼다. 울릴 만도 하지. 이 자식은 왜 매번 싸울 때 왜 이렇게 얼굴만 집요하게 쳐 맞고 오는 거야? 일단 얼굴부터 들이밀고 보나? 잔뜩 인상을 쓰고 상대방을 쳐다봐도, 상대방은 지금 자신의 눈조차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의미가 없지. 레너드는 조심스럽게 손으로 제임스의 턱을 붙잡고는 상처를 살폈다. 그제야 약간이나마 인지능력이 돌아온 모양인지 “많이 심해?” 라는 말이 돌아왔다. 


“어. 완전. 이제 좀 제정신으로 돌아왔냐?”

“아. 난 항상 제정신인데.”

“아니, 항상 좀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같이 굴면서 뭘.”

“너무하네.”


가만히 앉아 있던 제임스가 옆구리 부분을 손으로 살짝 누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레너드는 얼굴 부위의 치료를 서둘러 끝낸 후, 제임스의 팔을 잡아 떼어내곤 살짝 옷을 끌어 올렸다.


“너 말이야. 일단 무작정 달려드는 짓 좀 그만하지 그러냐.”

“그 땐 그게 최선이었어. 몸으로라도 덤벼들지 않으면, 못 막았을 거야.”

“……그리고 넌 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졌었지. 때 마침 못 도착했으면 어쩔 뻔 했어?”


그 물음에 제임스는 대답대신 그저 웃었다. 엉망이 된 꼴로 웃는 모습에 본즈는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아무튼 간에, 자신은 제임스에게 약했다. 의사인 자신에게 이상한 일을 시킬 때도 말려들었고, 우주를 끔찍이 싫어하는 자신을 우주로 끌고 갈 때도. 결국 제임스 T. 커크에게 레너드 맥코이는 거절하지 못했다. 


“본즈.”

“왜. 또. 뭔 소리를 하려고.”

“나 말이야. 어쩌면 크롤이, 에디슨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잔뜩 푸른 멍이 든 상처 부위에 약을 뿌려주던 레너드의 시선이 제임스에게로 향했다. 그나마 멀쩡한 한 쪽 눈으로 아까 와는 다릴 자신을 분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레너드는 그런 제임스의 눈을 잠시 쳐다봤다가, 곧 치료를 끝내 주고는 옷자락을 내렸다. 의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챙겨왔던 옷을 제임스의 품에 안겨주며 그가 입을 뗐다.


“그래. 비슷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달라.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알고 있겠지만. 짐.” 

“……그가 조금은 이해가 됐어.”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며 레너드를 바라봤다. 레너드가 잠시 말을 고르는지 입을 다문 채로 제임스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곧 다시 돌아오는 시선에 제임스가 손을 뻗어서는 레너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알아, 본즈. 방금 말해줬잖아. 나도 알아. 그냥 말하고 싶었어. 그것뿐이야.”  


웃는 모습이 아까보다는 좀 보기 좋다고, 레너드는 생각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제임스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는 “자, 빨리 무사히 돌아온 기념 포옹 해줘야지.” 장난 끼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능구렁이 마냥 말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상을 하고 있었던 주제에. 


“너 새끼가 뭐가 예쁘다고 포옹을 해줘. 해주기는.”

“그래서, 안 해줄 거야? 본즈?”


해줄 거잖아. 다 알아. 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눈동자에 본즈는 결국 제 이마를 손으로 눌렀다. 자신은 제임스 T. 커크에게 상대가 안됐다. 어째서인지 저 눈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기만 한단 말이지. “이번만 해준다.” 라고 투덜거리듯 대답하며 레너드가 그런 제임스를 안으며 그 등을 토닥거렸다. “또 해줄 거면서.” 라고 중얼거리며 제임스가 그 어깨에 제 고개를 묻고는 꽤 한참이나 그를 끌어안았다. 


가끔은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거지. 제임스는 그 말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