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생각보다 약했기에, 혼자만으로도 충분하고 스스로 유리하다고 자만심에 빠져버린 탓이 컸다. 갑작스럽게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빛에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평소처럼 후드를 뒤집어 쓴 쓴 사내가 타라의 앞에 등을 보인 채 서있었다. 이미 주변의 모든 적들은 얼어 붙은 지 오래였고, 타라는 사내의 등을 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 별일이네. 젊은 영웅님이 날 도와주기도 하고. 그 목소리게 '젊은 영웅'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예전보다 조금 어두워진 느낌인가. 그 생각을 하면서 타라가 가만히 팔짱을 낀 채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쪽에게 빚을 하나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말에 타라가 샐쭉거리며 웃었다. 어머, 그래? 라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설마 그 아이 때문이야?”
“…그래.”
“하지만 정말로 그 아이가, 네 동생인지는 확실하지 않잖아?”
“아니, 확신해.”
굉장한 확신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타라가 웃었다. 그런 것 치고는, 가족인데 되 찾으려고 하지 않네? 사실을 말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 말에 루이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타라가 작게 소리를 내면서 웃더니 알아, 알아. 젊은 영웅씨가 왜 그러는지 말이야. 라고 중얼 거렸다.
“그 아이라면 걱정마. 챙겨주는 사람들이 매우 많으니까.”
…감사 할 따름이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웨슬리는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웃었다. 팔에 무언가에 깊게 베인 것 처럼 난 상처 부위를 피를 닦아 내고, 천으로 꾹 묶어 지혈을 한 채로 웨슬리가 그래도 몸 정도는 좀 신경쓰는 게 어떤가. 내가 항상 따라 다닐 수도 없고 말이지. 그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런 웨슬리를 쳐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럼 나에게 신경을 끄면 되겠군.
아, 그게 쉽지가 않아서 말이야. 자네 같은 굉장한 능력자에게는 자연스레 관심이 가기도 하고 말이지.
그 말에 가뜩이나 매서운 그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금방이라도 죽일듯이 저를 노려보는 그 눈빛에도 웨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불손한 의도보단 정말 순수한 관심이 더 많으니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게나. 상처받는다네. 그렇게 말하면서 웨슬리는 치료를 끝내고는 응급의료품들을 정리했다.
까미유군과는 친했나?
…….
뭐, 그 이상이었던 이하였던 내 알바는 아니니, 더 말할 필요는 없네.
녀석은 내게 연락을 주지 않지.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웨슬리가 잠시 입을 꾹 다문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 젊은 의사가 내 마음에 좀 걸리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라서 말이지. 그 말에 사내의 표정이 아까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웨슬리는 제 몸을 일으키고 입술을 샐쭉거리며 웃었다. 혼자서 쳐들어 갈 생각이라면, 그만 두게나. 히카르도군.
자네 같은 사람의 생각은 잘 알지. 내 목숨 같은 건 상관없다, 뭐 이런 생각하고 있겠지? 웨슬리의 말에 몸을 일으키던 히카르도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웨슬리 슬로언' 들리는 이야기에 상당 수의 군 수뇌부와 좋지 않은 관계에 있지만 반대로 많은 수의 군인이 그를 추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도, 무기를 제공하는 이들도 많다. 퇴역을 한 것은 꽤 시간이 지난 일 이었지만, 그의 그 전술적인 능력이나 경험에서 오는 것만 같은 분위기는 간혹, 평상시의 그와는 어딘가 모를 괴리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웨슬리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바레타의 미간에 살짝 닿았다. 그의 표정은 얼어 붙어 있었다. 평소 처럼 웃고 있는 모습이 아닌 전투를 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모습. 괜히 회사나 연합이나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나? 얼어 붙어 있던 표정이, 입술이 샐쭉 거렸다. 필요 이상으로 적을 만들어 버리면, 자네 정말로……
죽는다네?
그렇게 말하는 웨슬리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미간에 살짝 닿아 있던 손가락이 금방 떨어졌다. 그리고 그 감촉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히카르도는 이미 먼저 걸어가 버린 웨슬리의 등에서 한참동안이나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원하신 정보는 다 찾아보았습니다만, 딱히 걸릴만한 정보는 없더군요. 어리지만 얕잡아 보면 안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그가 손을 잡고 있는게 예의 그 남자라면, 차라리 관심을 가지시지 않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차분하게 보고를 하는 그 목소리는 조금 낮게 깔려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행동도 그저 가만히 아직 어린 청춘의 이름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까미유 데샹이라는 그 이름을.
까미유 데샹군? 아니, Hypocrisy 라고 불러야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닥터? 그렇게 말하면서 농갈색의 코트를 입은 사내가 어딘가 모르게 자신만만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와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름을 모르진 않았다. 웨슬리 슬로언. 퇴역 장군으로 이 전쟁에 왜 끼어들게 되었는지 그 목적도, 이유도 알려지지 않는 남자. 하지만 회사도, 연합도 괜히 그를 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남자. 어쩌면 이 전쟁에서 가장 득을 보는 건 그가 아닐까.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조금씩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묵직한 발걸음. 하지만 여유스러워 보이는 표정.
어느 호칭이던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군요.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긍정의 말도, 부정의 말도 하지 않은 채 데샹이 웨슬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지금 같은 시기에 싸움 걸러 온 것도 아니고 싸움이 취미도 아니니 걱정말게. 뭐,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당신에 대해선 꽤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누구에게 말인가? 그 말에 데샹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사내의 말이,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눈치여서. 그리고 곧 그가 샐쭉거리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루그먼?
그는 재미있는 사내임에는 분명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웨슬리가 팔짱을 낀 채로 데샹을 쳐다봤다.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닐테고 말일세. 그렇습니까? 의외군요. 슬로언씨는 윌라드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목소리에 웨슬리가 갑자기 소리내어 웃었다. 그래, 하지만 그게 싫다는 뜻으로 직결되지는 않지. 무슨 말 입니까? 라고 데샹이 묻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면이 있거든.
그것 뿐 일세. 그렇게 말하면서 웨슬리는 한 참이나 입을 다문 채 데샹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곧, 등을 돌렸다. 저를 찾아오신 건 이것 때문 입니까? 등 뒤에서 아직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웨슬리는 그 말에 막 옮기려던 걸음을 멈췄다. 몸이, 고개가 돌아가고 다시 퇴역 장군의 시선은 아직 젊은 의사에게로 향했다.
아니, 그냥 궁금했네. 어떤 자인지, 궁금했네.
그래서, 소감은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주길 바라나?
웨슬리의 말에 데샹이 그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았다. 곧, 웨슬리의 표정이 아까와는 달리 얼어 붙었다. 정색을 한 그 표정과 목소리로 자넨, 너무 어리구먼. 이라고 말하더니 곧 웨슬리의 표정이 금방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 처럼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돌아왔다.
뭐, 나쁘지 않다는 뜻이네.
난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들어. …그렇습니까? 라고 묻는 데샹의 표정을 웨슬리가 천천히 살피더니, 곧 웃었다. 고맙네. 그럼, 다음에 보세. 예, 다음에.
……아주 짧은 인사였다.
그건 우연이라고 한다면 할 수 있었지만,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 술집에 그가 자주 드나든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어쩌다가 우연히 무언가 꼬투리 잡을 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술집에 자주 간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자신의 정보를 찾고 다니는 다는 것 쯤은 아마 그는 전부 알고 있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 남자는 자신에게 붙어 있는 사람의 수 만큼 자신의 뒤에도 사람들을 붙여 놓았으니까. 왜 이런 남자가 회사의 2인자로 남아있는 것 일까. 테이블을 하나 사이에 두고 두 남자는 대면했다. 한 사내의 얼굴엔 여유로움이 가득한 미소가 담겨 있었고, 한 사내의 얼굴은 그저 굳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술잔에는 두 사람 다 손도 대지 않은 채,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누구도 먼저 무어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술집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의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하고싶은 말이라도 있습니까?' 여유로운 미소를 품고 있던 사내가 먼저 말했다. 앞에 앉아 있던 사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좀 더, 전에. 좀더 젊었을 적에 서로 만났더라면 좀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어쩌면 친한 친구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로가 젊었을 적에 처음 만났었더라면.
난 그 쪽이 무섭다네, 크루그먼.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로언. 서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만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슬로언은 크루그먼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크루그먼도 처음 뱉었던 한마디를 제외하고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야 말로 지독한 사내들이었다.
조금 더 상황을 봐서…. 그렇게 생각하며 슬로언이 건물의 벽에 제 등을 바짝 기댔다. 고개를 살짝 숙인 사내의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 앞으로 3분쯤 뒤에…. 라고 생각하며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살짝 떼냈을 때, 순간 등 뒤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슬로언이 팔을 강하게 휘두르며 빠르게 몸을 돌렸다. 이게 누구야. 목소리에는 제법 경계의 날이 잔뜩 서 있는 채였다. 눈앞에 있는 백발의 남자를 바라보면서 슬로언이 입술을 샐쭉거렸다. 젊은 의사양반 아니신가.
“나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나?”
“당신의 응급치료는 저한테만 하는 게 좋을텐데요.”
슬로언이 잠시 입을 다문 채, 제 눈앞의 젊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슬로언의 팔을 세게 붙잡은 채 저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사내를 향해 슬로언의 입이 또 한 번 샐쭉거리며 웃었다. 너무나도 여유가 넘치는 웃음이었다. 뭐…… 천천히 입을 열며, 슬로언이 제 팔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것도 자네가 다 잘해준다면의 이야기겠지.”
가급적이면 그래주지 않겠나? 나도 사실, 백업 보다는 제대로 된 지휘가 하고싶거든. 그의 시선을 여전히 똑바로 바라보며 슬로언이 그의 손을 떼어냈다.
“뭐, 그런 건 걱정하지 마시죠. 누구보다 훌륭한 의사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의사 양반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거겠지.”
무슨 뜻 입니까? 등을 돌리고 선 슬로언을 향해 그가 외쳤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에게 이어진 상황은 총격이었다. 슬로언이 벽을 엄폐물 삼아 몸을 숨기면서 청년의 팔을 급하게 잡아당겼다. 그들이 숨자마자 흙바닥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슬로언이 먹힌 거 같은데? 라고 중얼 거렸다. 그런 슬로언을 빤히 바라보던 그가 살짝 인상을 쓴 채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제 질문 못 들었습니까? 제너럴.”
“그걸 꼭 말해줘야 아나?”
난 자네를 꽤 높게 평가하고 있단 말일세. 그렇게 말하며 슬로언이 그의 팔을 퍽, 하고 제법 센 소리가 나도록 쳤다.
“이대로 빨리 샛길 따라 가서 남들 치료 해주고, 엄폐하고 있게나.”
뒤 따라가겠네. 그러니 내가 자네한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게나? 그렇게 말하면서 슬로언이 슬쩍 웃었다. 그렇게 될 겁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그렇게 대답하며 그는 먼저 빠르게 발 길을 옮겼다.
웨슬리+히카르도
“사실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그 말에 그 사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인상은 더욱 구겨지고, 침묵은 길어졌으며,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슬로언은 그 답답함에 그저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면서 '그래도 현실 감각이 아주 없는 거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구먼.' 이라고 혼잣말을 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굳어 있는 남자의 어깨를 손으로 몇 번 가볍게 치고는 '괜히 사서 고생하지 말게.' 라고 귓가에 작게 속삭거렸다. 그의 말에 사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무슨 뜻이지?”
남자의 옆을 지나쳐 걸어갔을 때, 슬로언의 등을 향해 그거 던진 첫 말이었다. 그 말에 덤덤한 척 하고 있지만 떨리고 있는 목소리에 슬로언이 고개를 돌리며 쳐다봤을 때, 그는 무표정안에 감추어진 진짜 그의 표정을 보았다. 그것은 이미 스스로가 알고 있는 답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웠다. 현실을 감춘다고 해서, 그 감춘 것이 진짜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면 더욱 도망쳐 나올 수 없는 것 처럼. 슬로언이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샐쭉거리며 웃었다. 곧 손가락이 그를 가르키며, 말문을 열었다.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나?”
현실을 외면하지 말게나. 히카르도 바레타군. 그렇게 덧붙이면서 슬로언은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그 길에 남아 있는 건 어느 새 홀로 남아버린 남자 뿐 이었다.
카인+데샹
누구에게나 항상 웃으면서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자들은 한 번 경계를 해보아야 한다. 웃으면서 다가오는 자 일수록 마음에 품은 것은 웃음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들의 깊은 마음 속을 모두 다 알 수 있다면 이렇게 경계를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저를 유독 경계하시네요. 스타이거.' 슬쩍 웃으면서 하는 그 말에 그가 시선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그렇지만은 않네.' 그 대답에 청년의 대답이 돌아오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답과는 전혀 다른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카인은 제법 길게 숨을 뱉어냈다. 코트를 다시 여미면서 툭, 던지듯 입을 열었다.
“난 자네같은 부류들이 싫네.”
“저 같은 부류라니. 무슨 말씀이 하고싶으신 건지 모르겠는데요? 스타이거.”
“…괜히 떠보는 척 하지말게. 나는 슬로언과는 다르네.”
그 목소리에는 너에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겠다. 같은 단호함이 서려 있어서 청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웃었다. 너무하시네. 라고 대답했지만 그의 대답 같은 건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