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짐본즈] final frontier 3
2016.10.17 포스타입 업로드
레너드는 어째서인지 그 날 이후, 그 날 하우스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비가 내렸던 그 날. 그 이후로 제임스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다. 뭔가 그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더욱더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전부 불행해지거나, 모래처럼 흩어져버린다. 자신의 아버지는 죽었고, 마커스 제독은 변했다. 자신이 아꼈던 친구는 자신을 살리는 대신 죽어버렸고, 그로 인해 그 딸은 어머니는 잃었다. 자신이 만약 제임스 T 커크를 마음에 품으면, 사랑해버리면, 여기서 더 빠져버리면 그 또한 모래알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레너드는 지금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의 눈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그 눈은 사랑을 하게 만들어 버려. 그것은 레너드 맥코이의 새로운 두려움이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바쁜 것이 나았다. 레너드가 근무하고 있는 스타플릿 소속의 메디컬 센터는 비상시에는 제일먼저 캘빈의 사람들을 보호, 치료하는 치료 센터의 중추 센터였다. 근무 시간 내에는 캘빈의 시민들을 진료하고, 스타플릿 소속의 관계자들은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진료가 가능하기도 했다. 교대는 보통 3교대. 그리고 레너드는 자신이 주로 다니는 층 말고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어서 건물 구조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패드 한쪽 면에는 오전까지 진료를 했던 환자들의 기록을 정리하고, 다른 한 쪽에는 센터의 구조를 올려놓고 눈으로 훑었다. 아직 사소한 수다를 떨 정도로 친해진 메딕이나 너스들도 없어서 홀로 휴게실 구석에 앉아서는 커피나 홀짝거리며 그는 시간을 체크했다.
슬슬 휴식 시간도 끝이니, 개인 진료실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레너드는 컵을 든 채로 한 손에는 패드를 보며 그대로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걷다, 데스크를 지나가려는 찰나에 한 너스의 부름에 레너드가 고개를 들고는 “예?” 하고 그를 바라봤다.
“닥터 맥코이. 환자 분이 기다리고 계세요. 의료기록은 패드로 보내드릴게요.”
“아, 고맙습니다.”
너스의 말에 레너드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아직 휴게시간이 남아서 호출을 하지 않았던 걸까. 그는 진료실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니,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부드러운 인상을 하고 있는 남자는 들어오는 레너드를 보며 “내가 닥터의 휴게시간을 너무 앞당겨 버린 건 아닐지 걱정이 되는데.” 말하며 웃었다. 레너드는 컵을 홀더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돌아올 타이밍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의자에 앉았다. 때 마침 너스가 전송해준 환자 기록이 열렸다.
‘크리스토퍼 파이크’. 기록을 가만히 훑던 그는 그의 기록사항에서 잠시 눈이 멈췄다. 패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레너드는 파이크를 바라봤다. 파이크의 시선은 아까부터 레너드에게 향해 있었다.
“……보니까 오늘이 정기 검진 날짜가 아니신데요.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거죠? 제독님.”
레너드의 말에 파이크가 크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유쾌하게 웃던 그는 잠시 제 눈가를 훔치는가 싶더니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말을 하는 레너드의 모습에서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로 레너드를 바라봤다.
“우선, 난 이제 더 이상 제독이 아니라네. 은퇴했으니까. 그냥 편하게 미스터 파이크 정도가 좋겠군. 그렇게 긴장 하지마. 자네한테 뭐라고 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파이크의 말에도 레너드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해, 잔뜩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다. 빳빳하게 굳어있는 몸이 한 눈에 보였다. 겁이 많은 친구로군. 파이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천천히 살피다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자네 아버지를 알아. 마커스도 알고. 그냥 궁금했다네. 데이비드의 아들이 말이야.”
“………아버지를 어떻게 아세요?”
“30년도 더 된 이야기야. 예전에 행성 연합을 중심으로 각 행성 별로 대표들끼리 연합 탐사라는 걸 한 적이 있다네. 혹시 알고 있나?”
“……탐사선 프론티어라면 압니다.”
“자네 아버지는 그 탐사선의 과학 장교 중 한명이었지.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어. 그 시절의 마커스도 괜찮은 친구였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파이크의 표정에는 다소 쓸쓸함이 비춰져 있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레너드를 다시 빤히 바라봤다. “그래서 궁금해서 와봤네.” 그 말과 함께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계속 긴장을 하며, 뻣뻣한 상태로 있던 레너드는 그제야 숨통이 트였는지 숨을 길게 내뱉으며 책상 앞에 엎드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냈다. 그의 시선을 피했지만, 파이크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에게 꽂혀 있음을 느끼곤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
“자네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어.”
파이크의 말에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슬쩍 웃음을 터트렸고, 파이크는 그런 레너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덩달아 웃었다.
옅은 회색빛의 스타플릿 제복을 입은 제임스는 파일럿 후보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시뮬레이션실 앞에 섰다. 전면 유리 안 쪽에서는 파일럿 후보생들이 우후라와 술루의 지도 아래에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장이 설정되고, 모든 것은 실전처럼 이루어진다. 곧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났고, 제임스는 천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커크.” 패리스 제독의 목소리에 제임스는 가볍게 목례를 했고, 그녀는 그저 손만 살짝 들어올렸다
“어때 보이나. 이번 후보생들은?”
“글쎄요. 저도 방금 막 와서요.”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유리창 안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몽고메리 스콧 소령이 올린 제안서 잘 봤네. 제독회의에서 무사히 통과 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네요.”
유리창 안쪽을 바라보고 있던 패리스는 살짝 고개를 돌려 제임스를 바라봤다. 시선이 느낀 제임스가 살짝 고개를 돌렸고, 곧 그녀의 얼굴에 살짝 웃음이 내비쳤다.
“요즘 굉장히 좋아 보이네, 커크.”
“전 항상 좋았는걸요. 물론, 요즘 조금 더 기분이 좋다는 걸 굳이 부정하진 않을게요.”
다소 장난 끼가 가득 담긴 말에 그녀가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제임스의 시선은 금방 유리창 안쪽을 향했다. 무언가를 유심히 보던 그는 옆의 패널을 조작하더니 “3호기, 성급하게 굴지 마. 침착하게 해. 잘 하고 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통신 너머로, 조금 긴장한 듯한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제임스는 곧 패널을 누르던 손을 거두며 다시 유심히 살폈다.
“커크. 스타플릿 내부에서 자네에게 파일럿과 함선 책임자 둘 다를 일임하게 하는 것에 대한 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 물론 자네는 실력 있는 파일럿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능력 있는 지휘관이기도 하잖나? ……나는 앞으로는 자네가 함선의 함장으로써 집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제임스의 시선이 패리스에게로 향했다. 제임스가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 모습에 패리스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해도, 마지막까지 하고 싶다고 하겠지?”
“너무 제 머릿속에 있다 가신 거 아니에요?”
“파일럿들 생각은 다 비슷비슷하지.”
“그거, 선생님 이야기죠? 그러고 보니 요즘은 어떠세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갔네요.”
“그 사람이라면 항상 괜찮아. 오늘은 누굴 좀 만나러 간다고 외출했어. 다음번에 조금 놀러와. 그 사람, '파이크' 좋아 할 거야.”
“조만간 찾아뵐게요.”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웃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뮬레이션은 종료되었다. 이제는 생도들에게 무엇이 문제점이었고, 어느 점이 좋았는지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겠지. 옆에 서있던 패리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곧 시간을 확인 하곤 “먼저 가보겠네, 커크.” 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제임스는 나가는 그녀에게 가볍게 경례를 하곤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저 광경들을 보고 있으려니 예전 생각이 났다.
자만에 차있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서. 그 때의 제임스는 뭐든 할 수 있었고, 뭐든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두려움 같은 건은 없었고, 그런 건 알지도 못했던 때였다. 오로지 운만을 믿고, 운에 의지했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과거에 그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곧 울리는 통신기의 소리에 제임스는 통신 패널을 눌렀다.
“커크 대령님, 로비에 손님이 한 분 와계세요.”
누가 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제임스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굴 만나기로 약속한 적은 없는데. 혹시 손님 이름이?”
“꼬마 아가씨던데요. 이름은 ‘조안나 앤더슨’이구요.”
“금방 갈게.” 라고 대답하며 제임스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혼자서 스타플릿 본부까지 온 건가? 그는 리프트에 올라탔다. 팔짱을 낀 채로 조안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했다. 혼자 왔다면 왜 여길 혼자 왔냐고 화를 내야 하나? 아니, 무조건 애한테 화를 내는 건 좋지 않겠지. 그럼 왜 왔냐고 일단 물어봐야 할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야 하는 걸까? 생각을 정리하던 제임스가 제 손끝으로 자신의 이마를 꾹 눌렀다. 우선 딱 한 가지만 기억하기로 했다. 무조건 혼을 내지 말자.
로비에 도착하니 조안나는 로비 끝 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데스크 업무를 보는 대원 한명이 조안나에게 마실 것이라도 가져다주었는지, 그 앞에는 주스 팩 하나가 놓여 있었다.
“조안나.”
제임스는 조안나의 이름을 부르며 옆 자리에 조금 간격을 두고 앉았다. 신발 끝만을 보고 있던 조안나는 제 옷자락을 자꾸만 움켜잡았다가, 놓는 것을 반복했다. 처음, 함선에서 보았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아이의 표정은 다소 읽기가 어려웠다. 제임스는 앞에 높인 빨대도 꽂혀 있지 않은 주스 팩을 잡아서는 빨대를 꽂아서 조안나에게 내밀었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으면 나는 알 수가 없는 걸.”
“미스터 커크가 바쁜데, 내가 와서 방해됐어요?”
“괜찮아. 내가 바빴으면 바로 여기 왔겠어?”
그제야 고개를 들며 자신을 바라보는 조안나의 모습에 제임스는 웃으며 살짝 조안나의 볼을 손끝으로 두드리듯 문질렀다. 조안나가 주스 팩을 받았다.
“자. 무슨 일이야. 나한테 이야기 해봐.”
“……그냥. 음. 그냥, 오늘은 혼자 가기 싫었어요.”
조금 긴 침묵 끝에 나온 조안나의 말에 제임스는 입을 다물었다. 리프트의 안에서 자신이 했던 모든 고민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임스는 잠시 말을 하지 못했고, 조안나는 그가 말이 없자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럴 때가 있지. 별 이유 없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알아. 나도.”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조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안나는 얌전히 있었다. 제임스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눈을 굴리다 곧 조안나 앞에 살짝 한쪽 무릎만 꿇고 앉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분 전환 하러 갈까?”
조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스러운 눈으로 제임스를 바라봤다. 제임스는 조안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작은 손이 올라왔다. 제임스가 조안나를 안아 올리며, 목마를 태우며 스타플릿 본부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하러 가는데요?” 라고 조안나가 물었지만, 제임스는 그저 “끝내주는 거 보여줄게.” 라고만 대답할 뿐 자세한 건 말해주지 않았다.
제임스가 조안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비행 연습장이었다. 때마침 훈련이 끝난 참인지, 연습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멀리서 제임스와 조안나를 알아본 스콧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종종 주변에 있던 엔지니어 팀들이 제임스에게 경례했고, 조안나는 제임스의 다리에 붙어서는 그런 그들을 올려다봤다. 아이를 발견한 이들은 하나같이 누구에요? 대장님 숨겨진 딸이 있었어요? 라는 등 물었고, 그런 물음에 제임스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스콧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등짝을 손으로 때리며 “못하는 말이 없구만!” 이라고 소리쳤지만 제임스는 그저 와하하. 하고 크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 딸이면 좋겠지만, ‘친구’ 딸이야. 연습기 아무도 안 쓰지? 내가 좀 써도 될까? 스코티, 어린아이 용 보호복 좀 갖다 줄래?”
“아이, 아이. 그렇습죠.”
스콧은 그렇게 대답하며 어디론가 빠르게 걸어갔다. 조안나의 눈이 제임스의 등 뒤에 있는 전투기 몇 대에 향했다. “저거 타는 거예요?” 조금 기대감에 찬 목소리에 제임스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스코티는 어린아이용 보호복을 가지고 왔고, 제임스는 조안나의 옷 위로 보호복을 손수 입혀줬다. 제복 자켓을 벗어 근처에 걸어두고는, 위로 다른 보호 자켓을 입고는 제임스는 조안나의 손을 잡고 대기 중인 연습기 한 대로 다가갔다. 뒷좌석이 있게 개발 된 2인 용 전투기는 스타플릿에서 연습기로 사용하고 있는, 발키리의 개조 기종이었는데 이 기종을 토대로 현재의 벤전스가 탄생했다.
조안나를 안은 채로 콕피트에 올라가서는 뒷좌석에 조안나를 앉히고 벨트 버튼을 눌렀다. 앉은 사람의 신체 정보에 맞춰진 벨트가 착용되는 것을 확인한 제임스는 곧 조종석에 몸을 고쳐 앉고는 자신도 벨트를 착용했다. 콕피트의 유리가 닫혔다. 연습기가 기동되자, 온통 새카만 색이었던 유리는 순식간에 투명해지며 바깥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곧 연습기는 활로를 달리다, 유려하게 하늘 끝으로 올라갔다.
조안나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로 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천천히 속도를 유지하며 날았고, 곧 하늘을 날아다니는 오로라 무리를 발견하자 입을 뗐다.
“오늘은 운이 좋네. 잘 봐, 조안나.”
제임스의 말에 조안나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임스는 그들의 비행에 방해되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리의 옆에 조심히 서서 비행했다. 투명한 막 같은 날개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넥타를 보는 조안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우와아.”
“무리를 지어 사는 게 보통이라서 이렇게 비행하는 걸 좋아해. 자신들의 비행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옆에서 이렇게 같이 비행할 수 있어.”
“날개가 반짝반짝해요.”
“잘 보면, 몸도 반짝반짝 할 걸?”
“눈이 마주쳤어!”
조안나가 잔뜩 들 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말에 제임스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다른 생명체와 교류하는 걸 좋아해. 그러니까 이렇게 같이 살아가는 거야.” 제임스의 말에 조안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구나.” 라고 대답했다.
“정말 오늘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는데. 미스터 커크는 집요해.”
“음. 내 생각에는 내가 올 때까지 미스께서는 구두 끝만 바라보고 있었었던 것 같은데요?”
평소처럼 조금 장난 끼가 담겨있는 조안나의 목소리에 제임스는 조금안심하며 되물었다. “저엉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안나가 목소리를 조금 길게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흠. ……우리 들어갈 때 선생님 모시러 갈까?”
“정말, 정말 좋은 생각!”
제임스의 물음에 조안나가 손뼉을 치며 신나했다. 제임스도 작게 소리를 내며 웃다가 “기분은 어때?” 라고 조심히 물었다. 곧 조안나가 양 손의 엄지를 추켜세우며 “완전 최고예요!” 라고 소리쳤다. 제임스는 힐끔거리며 여전히 비행을 하고 있는 넥타 무리를 바라봤다.
“조안나, 슬슬 넥타한테 인사해줘. 우린 돌아가야 하니까.”
“인사 하면 알아들을까요?”
“물론이지.”
조안나는 창에 붙어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날 넥타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다. 마치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는 듯한 울음소리. 말의 소리 같기도 했지만, 말의 울음소리보다는 맑은 느낌이 있었다. 예전에 바다에 놀러갔을 때, 소라고둥을 귀에 댔을 때 들렸던 소리 같다고 조안나는 생각했다. 소리는 그들이 착륙 할 때까지 이어졌다.
조금 일이 일찍 마무리가 돼서, 레너드는 일찍 센터를 나올 수 있었다. 저녁시간대에 맞출 수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제임스의 눈을 어떻게 쳐다봐야 할지 또 고민했다. 그 때, 제임스는 알았을까? 레너드는 한 참 동안 땅만을 보고 걸었다. 옆에서 차의 클락션 소리가 울리며, 멈췄다. 뒷좌석과 조수석 창문이 모두 열렸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조안나가 고개를 내밀고 “선생님!” 이라고 외쳤고, 열린 조수석 창문 사이로 보이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제임스는 눈썹을 까딱이며 “닥터 맥코이.” 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왜 같이 있어요? 조안나, 머리 내밀면 안 돼. 위험하잖아.”
레너드는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조안나의 이마를 살짝 퉁겨주며 조금 잔소리를 했다. 그 행동에 조안나가 제 이마를 문지르며 이히히. 하고 소리를 내며 웃었다.
“조안나 기분 전환 좀 시켜주느라?”
“……기분전환?”
“일단 타요. 닥터 데리러 온 거니까.”
조수석 문이 자동적으로 열렸다. 레너드는 잠시 제임스의 눈을 조심히 바라봤다가, 비어있는 조수석을 바라봤다. 이 남자는 모를까?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걸까. 다시 제임스의 눈을 바라봤을 때, 그는 웃었다. 결국 레너드는 이 고민을 잠시 접어두기로 한 채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레너드가 조수석에 앉자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다. 매번 얻어 탈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제임스는 운전을 잘했다. 자신이 만나본 파일럿들은 보통 두 분류 중 하나였다. 운전을 잘하지만 엄청난 스피드광이거나 아니면 그냥 말 그대로 운전을 잘하거나. 파멜라가 전자였다면, 제임스는 후자였다.
“진짜 뭐했어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조안나를 흘끔 보다, 제임스를 힐끔 쳐다며 레너드가 물었다. 레너드의 물음에 뒤에 앉은 조안나가 제 입을 조금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딱 봐도 제임스가 조안나의 기분전환을 성공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늘을 날았어요!”
조안나가 그렇게 외쳤다. 레너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조금 놀람으로 가득 찬 얼굴에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일 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넥타도 봤고……. 소리도 처음 들었는데……” 조안나가 말끝을 길게 흐리며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레너드는 조안나의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는 “그래, 재밌었겠다.” 라고 대답하며 살짝 눈을 감으며 웃었다.
“닥터도 다음에 타볼래요?”
“……네?”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조금 얼빠진 소리를 냈다. 때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고, 제임스의 시선이 레너드에게로 꽂혔다. 레너는 양 손을 휘적거리며 다급하게 답했다.
“아, 아뇨 됐어요. 전 못 타요. ……안 그래 보이지만 나 비행공포증 있거든요.”
“……혹시 우주 공포증도?”
제임스의 말에 레너드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제임스는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금방 돌렸다. 신호가 바뀌어서 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그들이 집에 도착하고, 이제 막 저녁 준비할 때 쯤 거세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밥을 먹기 전에 혹시 태풍이 올지도 모르니 하우스를 보호 상태로 점검 해놓고 온다면서 우비를 찾았다. 바로 옆이긴 했지만 빗줄기가 워낙 거세고, 바람이 심했기 때문에 우산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레너드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고, 집안의 창문들을 그를 대신해 점검했다. 조안나는 레너드를 따라다니며 레너드의 행동을 따라했고, 그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창문 점검을 다 끝내니 문이 열리고 쫄딱 젖은 제임스가 현관에 섰다.
그가 들어오기 위해 잠깐 문을 열었을 때 들린 바람 소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제임스는 푹 젖어버린 우비를 벗으며 현관에 걸었고, 우비의 밑으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침까지 이러면 어쩌죠?”
“차가 움직일 수 있는 정도라면 출근 할 때 데려다 줄게요. 조안나도. 아마 아침까지 심하면 출근시간이나 등교시간이 밀릴 거예요. 너무 심하면 전부 쉴 거고.”
“……혹시 긴급 출동도 해요?”
“필요하면 해야죠.”
제임스의 대답에 잠깐이지만 레너드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니까 걱정 말아요.” 제임스는 그렇게 말했지만 레너드의 표정은 여전히 조금 어두웠다. 조안나가 레너드를 바라보며 작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모든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파일럿만큼 예상치 못하는 일을 겪는 직종도 드물어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커크, 아니 제임스. 왜 함장인데 파일럿 직함 까지 달고 있어요?”
레너드의 물음에 제임스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흠. 배고프지 않아요? 우리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라고 말하며 한창 끓고 있는 냄비를 손으로 가리켰다. 레너드는 더 군말없이 부엌으로 갔다. 불을 끄고, 접시에 스튜를 담아냈다. 머리가 조금 침착해지니, 순간적으로 또 무례한 말을 퍼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내가 뭐라고 또 그의 일에 오지랖을 부리듯 잔소리를 했지. 테이블에 그릇을 내려놓으니, 제임스가 먹기 좋게 썰어진 빵이 담긴 바구니를 테이블에 내려놨다. 물 컵이 세잔. 샐러드 보올 하나와 작은 접시 세 개.
“스타플릿은 기본적으로……전투기 파일럿의 수가 적어요. 원래부터 적은 건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파일럿 교육 시스템은 아직 진행되고 있잖아요?”
“그야 파일럿 교육은 필요하니까요. 함선을 움직이려면 조타수가 필요하잖아요? 다만 스타플릿은 더 이상 ‘전투기 파일럿’이 필요하지 않는 세상을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마 전투기 파일럿 수는 점점 더 줄어들겠죠.”
제임스가 조안나에게 포크와 수저를 내어주며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제임스가 웃는 걸 보고 조안나도 따라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조안나가 말하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그래.” 라고 대답했다. 잠시 시간을 두고,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스타플릿의 가장 큰 목적은 우주의 탐사. 그리고 새로운 생명체와의 접촉이죠. 우리는 평화적으로 교류하길 원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사실 처음 입대했을 때는 동감도 못했고, 동의도 못했어요. 난 그때 문제아, 반항아였거든요.”
그 말에 레너드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금 모습을 보면 전혀 상상이 되질 않는데. 저번에 말했던 것도 그렇고. 그가 빤히 제임스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전혀 상상이 안 되네요. 반항아인 커크라니. 어머니한테 많이 혼났겠어요.”
“매우, 매우 놀랍게도 어머니는 날 별로 혼내지 않았었어요. 그렇다고 억지로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았죠. 경험해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고만 이야기해주셨죠.”
“그건 맞는 말이죠. 경험만큼 좋은 건 없어요. 하지만 경험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내가 보기엔 커크는, 좋은 쪽으로 변했군요.”
그 말에 그는 웃었다. “내 주변에 너무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요.” 라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인 그는 잠시 레너드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해해요.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난 하늘도, 우주도 좋아하는데……가장 좋아하는 건 평화로운 하늘과 우주에요. 평화로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건 정말, 정말 기분이 좋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제임스의 목소리는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차분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파일럿의 수가 줄어든다고 말했었을 때의 목소리는 다소 서운함 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지만, ‘평화로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어떤 생기까지 느껴졌다. 레너드는 잠시 제임스를 바라봤다.
“그래서 스타플릿은 몇 년 전 부터는 아예 공격함을 만드는 걸 그만뒀어요. 그리고 아마 벤전스는……마지막 전투기 모델이 되겠죠. 앞으로는 그 모델을 토대로 좀 더 좋은 비상 셔틀이나 포트를 개발할 거예요.”
“………연합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 이예요. 여기는, 진짜. 정말로…….”
레너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합의 의료기술도 좋은 편이었지만, 그 보다도 언제부턴가 공격적인 성향이 높아졌었다. 레너드는 그런 것에 부정적이었고, 하물며 전투기의 파일럿이었던 파멜라도 그랬다. 그런 레너드를 보던 제임스가 빙긋 웃더니 대답했다.
“모두가 노력한 덕분이죠. 수 십 년간, 수년 간.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고, 잠시 길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덕분에.”
제임스의 말에 레너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뒤에는 저녁을 먹으면서, 제임스와 조안나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웃었다. 아마 그는, 그래도 마지막까지는 파일럿으로도 있고 싶은 것이 아닐까. 정확한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제임스가 말을 하는 내내 레너드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늘을 좋아하고, 나는 것을 좋아하니까. 함장 석에 앉아 있는 것 보다는 보다 하늘에 가까워질 수 있는 파일럿으로 좀 더, 오래 남고 싶은 것이 아닐까.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임스를 바라봤다. 조안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제임스의 시선이 살짝 레너드를 향했다. 아. 또. 또다. 저 시선. 레너드는 잠시 제임스의 눈을 바라보다 금방 고개를 숙였다.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또 다시 의식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비가 내렸다. 바람은 조금 조용해진 것 같지만,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은 채였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아직 잘 시간이 되지 않은 조안나는 거실의 창문에 바짝 귀를 대고 붙어 있었다. 레너드는 그런 조안나의 행동이 이상해 레너드는 잠시 그 앞에 서서 조안나를 바라보다 쪼그려 앉았다.
“……조안나. 뭐하는 거야?”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바람 소리를 잘못 들은 거 아니고?”
“바람 소리가 아니에요.”
레너드가 잠시 조안나를 바라봤다가, 어느 새 옆으로 다가 온 제임스를 올려다봤다. 아이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람 소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조안나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조안나는 한 참을 귀를 대고 있다 고개를 들어서는 제임스를 바라봤다.
“미스터 커크, 잠깐 테라스 창문 열면 안돼요?”
“……어떤 소리가 나는데?”
제임스의 질문에 조안나는 조금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표현하기 어려운지 한 참이나 말을 고르더니 곧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목소리는 잔뜩 힘이 없었고, 제임스는 잠시 바깥 날씨를 확인했다. 바람은 조금 줄어들었고, 비는 여전히 거셌다.
“조안나, 어느 쪽으로 열어야 돼?”
제임스가 조안나에게 묻자 조안나가 걸음을 옮겼다. “레너드, 혹시 모르니 타올 좀 갖다 줘요.” 라고 말했고, 레너드는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가서 타올을 가져왔다. 제임스가 창문을 조금 열고, 조안나가 그 틈사이로 팔을 뻗었다. 팔을 뻗고 무언가를 잡은 것인지 조안나가 넣었던 팔을 빼자, 제임스는 지체 없이 다시 창문을 닫았다. 꾸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의 손에는 잔뜩 물에 젖은 채 축 쳐져 있는 족제비 같은 생물이 있었다. 레너드는 그런 생물을 처음 봤다. 조안나의 손 안에 있는 생물은 잠시 고개를 드는가 싶더니, 금방 다시 축 늘어졌다. 제대로 된 소리도 내지 못하는지, 마치 아픈 사람이 앓는 것 마냥 아슬아슬한 소리가 이어졌다. 제임스가 손으로 조심히 그 생물의 머리를 살짝 문지르듯 쓰다듬자, 생물이 조금 반응을 했다.
“……이건 넥타에요.”
“……넥타라고요?”
“네, 아마 유체일 거예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왜 혼자 떨어졌지?”
“어디 다쳤나 봐요.”
조안나가 가만히 바라봤다. 레너드는 잠시 조안나의 손에 있는 생물을 유심히 살피더니, 곧 바닥에 타올을 깔았다. “조안나, 여기 조심히 눕혀놔. 제임스, 미스터 벤한테 전화 좀 해줄래요?” 그렇게 말하면서 레너드는 타올로 젖은 털을 조심히 닦아냈다. 조안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런 레너드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조안나, 가서 타올을 두 장 더 갖고 와줄래?”
레너드의 말에 조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임스는 옆에서 술루와 통화가 된 건지, 전화를 대신 잡고 스피커 소리를 잔뜩 키웠다.
“아. 미스터 벤. 이런 시간에 미안해요. ……내가 넥타 유체는 처음 봐서요. 외관상으로 다친 곳은 안 보이는데, 털이 잔뜩 젖었어요. 내가 알기론 넥타는 자가 회복이 빠른 편인 걸로 알고 있는데, 유체는 다른가요?”
레너드의 물음에 전화를 받은 벤이 대답했다. “유체는 워낙 신체가 약해서요. 근데 혼자 떨어진 거예요? 어쩌다 그렇게 됐지……. 일단은 체온을 올려주는 게 좋아요. 털을 말려주는데 드라이기는 쓰면 안 돼요.” 벤의 말에 레너드는 네, 네. 라고 대답하면서 물기를 닦아내는 데 집중했다. 조안나가 타올을 가지고 오자, 바로 받고는 이어 물기를 닦았다. 제임스는 잠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방으로 들어가 금방 담요를 가지고 나왔다.
“네, 알았어요. 고마워요. 또 모르는 게 있으면 메시지 남길게요.” 레너드는 그렇게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테이블에 올려 둔 핸드폰을 챙기면서 제임스는 가져 온 담요를 레너드의 옆에 내려놨다. 털의 물기를 닦아낸 레너드는 조심히 어린 넥타를 담요로 감싸 품에 안고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밖에서는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조금 요란한 소리에 조안나가 몸을 움찔 거렸다.
“뭐 더 필요한 건요?”
“……일단은 담요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어요.”
“찾아볼게요.”
조안나는 레너드의 옆에 앉아서는 품에 있는 넥타를 유심히 살펴봤다. 아까보다는 그래도 내는 소리가 조금 나아진 듯, 어린 넥타는 작은 눈을 몇 번인가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괜찮을까요?”
조안나가 작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그 속삭임에 레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을 거야.” 라고 마찬가지로 작게 대답했다. 금방 담요를 하나 더 찾아온 제임스는 레너드에게 담요를 내어줬다. 레너드는 담요의 위로 또 담요를 두르며 작게 한 숨을 내뱉었다.
“……넥타 유체가 이렇게 생긴 건 처음 알았네요.”
“성체랑 너무 다르긴 하죠? 근데 진짜 혼자 있는 게 좀 이상하긴 하네요.”
“아까 엄청 바람 셌는데, 그 때 날아온 건 아닐까요?”
두 사람의 말에 불쑥 조안나가 끼어들며 물었다. 그 말에 레너드와 제임스가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 조안나를 바라보더니 거의 동시에 “그럴 수도……….” 라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자 두 사람이 이번에는 또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침묵과 동시에 제임스의 핸드폰이 울렸다. 제임스가 뒤로 돌아서서 통화를 받았다. 받는 목소리는 심각했고, 옆모습으로 보이는 얼굴은 조금 굳어 있었다. 통화는 빠르게 끝났다. 제임스는 잠깐 레너드를 힐끔거리듯 바라봤다가 금방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상대를 추정해 보건데, 처음 전화를 건 건 아마도 제임스의 상사……일 것 같았다. 그리고 현재 통화 중인 상대는 ‘스팍’ 인 것 같았다. 제임스의 입에서 우후라와 술루의 이름이 나왔다. “스콧은 아마 스타플릿에 있을 거야. 체콥도. 각자 순서대로 빔미업 시켜달라고 하자. 이 날씨에 지금 당장 차나 직접 이동하는 건 힘들어.” 레너드는 직감했다. 긴급출동이구나. 왠지 모를 불안감이 레너드에게 엄습했다.
“미안해요, 가봐야 될 것 같아요. 문단속 잘하고 있어요. 뉴스 채널 틀고요.”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급하게 현관문으로 향했다. 현관으로 가기 전, 제임스의 시선이 잠시 레너드에게 머물렀다. 순간 착각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의 눈은 분명히 자신을 바라봤다. 금방 시선이 돌아갔다. 조안나가 제임스의 뒤를 따라갔다. 레너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조안나의 “미스터 커크 조심해요.” 라는 소리가 들렸고, 제임스의 “응, 그래.” 라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똑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레너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미 제임스는 나간 뒤였다. 조안나가 쪼르르 들어와서는 멍하니 자리에 서있는 레너드를 올려다봤다. “선생님?” 조안나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레너드가 고개를 숙였다.
“오늘 소파에서 자도 돼요?”
“……그래. 가서 이불 갖고 올래? 혼자 할 수 있어?”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요.”
레너드의 물음에 조안나가 웃으면서 대답하고는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조안나가 방으로 들어간 걸 보고, 레너드는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별일 없겠지? 별일 없어야 하는데. 레너드 맥코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들은 알게 모르게 불행해진다. 마치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흘러내렸다. 손안에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를 진짜로 좋아하나봐. 언제부터? 레너드는 또 다시 그렇게 생각했다. 비바람 소리가 들렸다.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초조함과 불안함이 레너드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