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사이퍼즈 토막글 연성
햇살을 머금은 것 같은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그녀의 능력을 닮아 그런 것 일지도 모른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손은 이미 많은 것을 베었고, 그녀 또한 베어버릴지 모른다. 눈앞의 소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서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오로지 검만을 쥔 채로. 오로지 자신이 하고싶은 마음대로.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햇살을 머금은 머리카락이, 하늘은 머금은 것만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는 앞으로 다가왔다. 붙잡은 손은 너무나도 따뜻해서 그는 저도 모르게 힘 주어 그녀의 손을 꽉 붙들었다. 손을 붙잡은 그의 표정이 어딘가 슬퍼보여서, 그녀 또한 그의 투박한 손을 붙잡은 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다더라."
"……마음에 담아 두고 계세요?"
"……조금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어쩌겠어.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목소리는 어딘가 힘이 빠져있었다. 평소에 보던 모습과는 달리 풀이 죽어 있는 모습. 괜찮아요. 소녀는 두 팔을 뻗어, 그의 귀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괜찮아요. 소녀는 웃었다. 평소처럼. 하지만 평소보다도 더 환하게.
"누가 뭐라고해도……저는 이글씨가 좋으니까."
"……."
"모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만큼, 제가 더 좋아한다는 말을 해드릴게요."
"……하지만 난 네게 해줄 게 없어. 녀석들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앨리셔."
"그렇지 않아요."
저를……아껴주시고, 좋아해주시잖아요? 이글의 귀를 가리고 있던 앨리셔의 손이 내려와서, 그의 두 손을 붙잡았다. 따뜻한 손. 온기. 팔만 뻗는다면 금방이라도 안을 수 있는 거리에서.
"그 마음이라면……전 충분히 행복해요."
"……."
"그러니, 저도 제 마음을 나눠 드릴테니……이글씨도 제게 마음을 나눠 주세요."
그 말에 이글은 그저 웃었다. 아무런 대답없이, 자신의 손을 맞잡고 있는 그녀의 손등 위로 살짝 입맞추면서 그저 웃었다.
그 남자와의 만남은 우연에 가까운 것 이었다. 머리를 식힐 겸, 우연히 그 근처를 걷고 있었을 뿐이고. 자신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그 남자도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 그리고 정말로 우연히도 자신은 나올 때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고, 그 남자가 나올 때는 비가 이미 내리는 중이어서 우산을 가지고 나왔었을 뿐. 그리고 혼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자신을 우연히 발견한 그 남자가 우산을 씌워줬을 뿐.
다 큰 남자 둘이서 한 우산을 쓴 채로 나란히 걷는다는 건, 제법 우스운 꼴이라고 루이스는 생각했다. 게다가 그 상대방이 헬리오스의 다이무스라면. 아마 연합의 누군가 중에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미쳤냐고 하는 녀석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루이스는 괜히 제 옷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비가 와서 그런지 주변 공기도 눅눅한데, 이 남자와는 사이도 어색했다. 두 사람 간의 공기는 너무나도 무거워서, 흡사 공기에 압사당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와는 이렇게 평화롭게 나란히 걸을 만한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루이스는 힐끔, 제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자신과는 다르게 체격도 좋았고, 키도 컸다. 냉정하고, 침착한 그 모습은 동생인 이글과는 확연하게 달라서 가끔은 둘이 정말 형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서로 검을 겨누는 걸 봤을 땐 정말 형제구나 싶었지만.
“……이봐, 이제 됐어.”
“연합의 건물은 좀 더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연합으로 가려는 게 아니니까.”
사실은 어서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마음이 더 컸다. 가늘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회피한 채, 루이스는 후드를 푹 눌러썼다. ……다이무스 홀든. 사내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다이무스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던 루이스의 시선이 그 얼굴로 돌아갔다. 강렬한 시선이 루이스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줬으면 좋겠군.”
“……서로 간에, 그렇게 다정하게 이름을 부를 만한 사이는 아니잖아?”
“……아이스.”
다이무스의 말에 루이스가 잠시 시선을 아래로 숙였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다. 다이무스는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차가운 공기가, 빗소리가, 그 시선이.
“……루이스.”
“…….”
“……그 쪽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다음부터, 이름으로 부르던지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루이스는 비오는 거리를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