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에이단] 2
* 저번에 썼던.. 에이든이 늑대인간이라는걸 풀어보고 싶어서 쓴.. 중세판타지.. (막나감)
이런 급전개....... (착찹
영은 이주민이었다. 먼 동쪽 대륙에서 자신의 쌍둥이 누이와 함께 이 대륙으로 오게 되어 이 집, 저 집에 신세를 지내며 살다 지금의 영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둘이 이 영지에 오게 된 당시의 나이는 17세 정도였다. 어린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고, 그렇다고 성인이라고 불릴 수는 없는 나이였다. 이곳에 오기까지 두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들을 제 나름대로 터득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은 무난하게 평범하게 돈 벌이를 하면서 더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골목의 두 번째 안쪽 집에 작은 가게를 차리고는 두 사람은 그렇게 지냈다. 영의 쌍둥이 누이는 어느 날 가게에 찾아 온 손님 한명과 눈이 맞았던 것 인지, 그와 자주 돌아다니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영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라도 자신의 누이가 행복해진다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누이가 실종되었다. 몇 달 전에. 그리고 누이와 자주 만나던 남자마저도.
갑작스럽게 사라질 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영은 그래도 자신의 누이처럼 차려 입고, 누이가 자주 나갔던 사교 장소 들을 찾아갔다. 여자인 척 하며 접근하는 편이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하지만 영주가 여는 사교 파티를 간 것은 어쩌면 실수 일지도 모른다고, 영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서 이렇게 생각해봤자.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에이든을 힐끔 거리던 영이 곧 다시 고개를 푹 숙여 일에 몰두했다.
“원래 말이 별로 없나.”
“……그럼 원래 궁금한 게 많으세요?”
에이든의 말에 영이 툭 말을 내던지고는 책상 서랍을 열어서는 여러 종류의 단추를 늘어놓았다. “난 금색이 좋아.” 에이든이 툭 던진 말에 영이 고개를 들고서는 잠시 에이든을 바라봤다. “……별로 안 어울려요.” 그렇게 대답했을 뿐 이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진 않나.”
“그렇게 따지면 영주님은 안 심심하겠어요.”
“내가 많은 사람들이랑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나?”
에이든의 말에 영이 결국 완전히 고개를 들어 에이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뇨.” 에이든의 말에 영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 사이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에이든이 깊게 한숨을 내뱉더니 곧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일 또 오지.”
에이든은 그 말을 끝으로 가게를 나가버렸다. 영은 한참동안이나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 결국 힘없이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을 뿐 이었다.
다음 날 평소와 같이, 가게의 문을 열고 있었을 때 영에게 경관이 다가왔다. 그는 제법 침통해 보이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고, 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게의 문을 열던 영의 표정이 곧 빠르게 굳어지고, 손이 멈췄다. 영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 곧 입을 다물었다. 아. 짧게 소리만 내뱉고는 그대로 제 입가를 매만졌다. “직접 가서 확인을 해주어야…….” 경관의 말에 영은 그저 아무런 말도하지 못했다.
안치소에 도착해서 본 것은 흰 천으로 쌓인 철제 침대였다. “얼굴 말고는 멀쩡한 부분이 없더군요. 괜찮겠습니까?” 검시관이 건넨 말이었다. 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덮어진 천의 밖으로 살짝 빠져나온 하얀 손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누이의 시체를 확인했다.
누이와 함께 남자도 같이 있었다. 마치 짐승이 파먹은 것 같은 상처 자국. 난도질당한 몸. 영은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감싼 채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이미 엄청나게 흘러 새벽이 되어 있었고, 오늘 에이든은 오지 않았다.
“살인 사건입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에이든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누군가의 보고는 계속해서 이어져다. 20대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 무언가 씹어 먹은 흔적. “피해자의 가족에게는.” 에이든의 딱딱하게 떨어진 목소리와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연락했습니다만, 그게. 영주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의 말에 에이든의 표정이 보다 더 굳어졌다. 원래부터도 얼굴이 굳어 있는 남자였지만.
“……어때보였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신경 쓰십니까.”
남자의 말에 에이든은 깃펜을 다시 손에 쥐었다.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가 인가. 가만히 자신이 글씨를 써 내려가던 종이를 바라보다 다시 깃펜을 내려놓더니 의자에 걸쳐 둔 코트를 입었다.
“알아봤어.”
“예?”
“……녀석은 날 알아봤다고.”
내가 그를 알아 차렸듯이. 에이든은 그렇게 말을 덧붙이고는 제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에이든이 영의 가게를 찾아 왔을 때, 가게는 온통 엉망이었다. 물건은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었고, 천들은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짐승의 냄새가 났다. 아니, 자신과는 같다고 할 수도 없는 완전히 다른 짐승의. 잘게 콜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이든은 순식간에 방 안까지 뛰어 들어갔다. 곧 영의 몸을 누르고 있던 남자의 어깨를 잡아 벽으로 내던졌다. 에이든은 우선 영을 제 품으로 끌어 당겨 힘주어 꽉 안았다.
벽으로 내던져진 남자는 몇 번인가 고개를 흔들고는 이상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창문을 깨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에이든은 기절한 영을 들쳐 메듯 안아 올렸다.
눈을 떴을 땐 온 몸이 세게 얻어맞은 듯 욱신거렸다. 영은 눈은 떴지만, 제대로 뜨지도 못한 상태로 누운 채로 끙끙 거리면서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제 방이 아니었다. 골목에 있는 그 작은 가게가 아니었다. 영은 천천히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겨우 눈을 제대로 뜨고는, 천천히 몇 번 깜빡거렸다. 침대에서 그렇게 기어 나오려던 영이 그대로 바닥으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남자의 팔이 영의 팔을 붙잡고는 다시 침대에 영을 쑤셔 넣듯 밀어 넣었다.
“……어디, 예요?”
“……성.”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죽고 싶었던 사람이, 살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나?”
남자, 아니 에이든의 질문에 영은 침대 안에서 겨우 몸을 웅크렸다. 이불을 제 머리 끝까지 올린 채로. “넌 꼬박 4일을 앓았어.” 에이든의 말에도 영은 대답을 하거나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왜 그렇게 나를 신경 써요?”
겨우 이불 안에서 고개를 내민 영이 내뱉은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에이든이 고개를 돌려 영을 바라봤다. 무뚝뚝하게 굳어 있는 표정. 남자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이든과 영의 시선이 마주쳤다가, 곧 서로 물러났다.
“그럼 너는 왜 날 의식하나.”
에이든은 낮게 말했다. 아니, 말을 했다는 표현 보다는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는 표현에 가깝다고 영은 생각했다. 영은 낮게 숨을 토해냈다. “……몰라요.” 영이 가까스로 내뱉은 말에 에이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4일 전에 누이의 시체를 확인했어요.”
“……너를 공격한 게 네 누이를 죽인 녀석이지. 자주 오던 사람이었나.”
“……주문 받았던 물건을 꺼내오려고 방에 들어갔었는데…….”
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에이든은 손으로 제 입가와 턱을 문지르며 낮게 웃었다.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나.” 에이든의 말에 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모든 상황을 본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적어도, 영 자신이 느끼기엔.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영은 그저 숨을 죽인 채로, 에이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숙였다.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나 때문이로군.”
무뚝뚝하게 떨어졌던 지금까지의 목소리와는 달리 탄식이 잠겨 있는 목소리라고 영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