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엔하랑] 바리스타 하랑 가게 손님 티엔 1
짧ㅂ음...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자라나면서, 눈의 시력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비정상적으로 한 쪽 눈의 시력만이 뚝뚝 떨어졌다.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떨어진 시력이 돌아오는 법은 없었고 멈추지도 않았다. 결국 한 쪽 눈은 완전히 시력을 잃었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한 쪽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남들과는 달리 반쪽만 보이는 세상이기에 더욱 주의 깊게 주변을 살펴야만 했다. 하랑은 그런 것들에 모두 익숙해지고야 말았다.
작은 카페의 안은 항상 조용했다. 가끔 오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카페에서 마시기보다는 테이크아웃을 해서 나가는 손님이 전부였고, 딱히 사람들이 몰리는 카페도 아니었던 탓 이었다. 조용한 음악과 조용한 분위기에 그저 카운터에서 턱을 괸 채로 하랑은 그 분위기에 취해 조금은 졸았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오는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날 때면 퍼뜩 깨어나게 되는 것 이었다.
들어 온 남자는 자주 오는 손님은 아니었다. 아니,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남자는 깔끔한 차림을 했고,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커피를 주문했을 뿐 이었다. 주문한 커피를 내어주고, 그 손님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까닥이고는 가게를 나갔다. 나가는 손님의 등 뒤를 향해 ‘안녕히 가세요.’ 라는 인사만 하고는 하랑은 다시 또 하릴 없이 카운터 의자에 앉았을 뿐이었다.
그 뒤에도 그 손님은 종종 찾아왔다. 항상 비슷한 시간대였다. 하랑이 졸고 있는 시간. 무료한 시간. 그리고 시키는 메뉴도 항상 한결 같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 얼음은 조금 적게.’ 로.
남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학생이 아니란 점은 분명했다. 가끔 그는 카페에 들어오면서 일 관련 전화를 하는 듯 했고, 능숙하게 중국어를 사용하고는 했다. 하랑은 그런 능숙한 중국어 소리를 들으면서 통화를 하는 남자의 모습을 힐끔 거리며 쳐다본 적도 있었다. 그는 표정을 바꾼 적이 없었다. 항상 같은 표정이었다. 어딘가 무심해보이고, 또 어딘가 심드렁한 것처럼 느껴지는 표정. 남자는 웃지 않았다. 제법 잘 생겼는데, 얼굴이 아깝다. 하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도 평소와 똑같은 날 이었다. 단지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하늘이 개었다. 그리고 남자는 평소보다 한두 시간 더 늦게 카페에 들어왔고, 주문을 끝냄과 동시에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 하랑을 빤히 쳐다보았다. “……손님?” 하랑이 슬쩍 그를 부르자, 남자는 잠시 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곧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야. 하랑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획 몸을 돌렸을 뿐 이었다.
항상 똑같은 주문. 똑같은 음료.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 내린 커피를 카운터 테이블 위에 내어주자, 남자는 커피를 받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포장지 같은 것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그 손님은 하랑에게 손바닥을 펴보라는 제스처와 눈짓을 보냈다. 남자의 그런 행동에 하랑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스런 표정을 지은 채로, 남자를 바라봤으나 그는 그저 말없이 어깻짓만 했다.
하랑이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펴서 내밀자, 곧 그 손바닥의 위로 사탕 몇 개가 우수수 떨어졌다.
“……하?”
말 그대로 실없는 소리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정말 실없는 소리였다. 하랑은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사탕과 남자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봤고, 남자는 평소와 똑같은 무심한, 굳은 표정을 한 채로 대답했다.
“……항상 졸고 있길래.”
“아.”
그랬었지. 하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사탕과 남자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그러더니 곧 사탕 하나를 집어 들어서 남자의 눈앞에서 흔들더니 “……잘 먹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그런 하랑의 인사에 잠시 하랑을 빤히 바라보다 저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려는 것처럼 굴더니, 이내 숙이진 않고 손으로 제 입가를 가렸을 뿐 이었다. 하랑은 아마 그가 웃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왜요?”
“……음.”
“……손님 지금 웃은 거 아니에요?”
툭 거침없이 질문을 던진 채로 하랑이 남자를 빤히 바라보자 그제야 그가 제 입을 가리던 손을 내렸다. 하랑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가 곧 몸을 돌려 카페의 문으로 가면서 툭 말을 내뱉었다.
“의외여서.”
“……?”
남자의 말에 하랑은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만을 지었을 뿐 이었고, 남자는 끝끝내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대로 카페를 나가버렸다.
하랑은 남자가 나간 문을 한 참 동안이나 바라보다 여전히 제 손 위에 놓인 사탕 무더기들을 바라보았다. 작은 접시 위에 그 사탕들을 쏟아 넣고는 다시 손님이 나갔던 문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저 손님은 내일 또 올 것이다. 오늘처럼 늦을 수도 있고, 원래 오던 시간에 올 수도 있고. 물어보는 것 정도는 그 때 해도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