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그것은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갑자기 급증하는 차원 이상 계수와 더미 출현 빈도.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높아져서 종래에는 한 도시마다 더미 몬스터의 군단들이 장악을 해버릴 정도였다. 헤르메스는 그 당시 구조부는 정확한 체계나 직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있는 것 이라고는 포메이션을 나눈 약 10인 1팀 체제. 그리고 그 10인의 1팀을 버디 3명이 관리, 보조하는 것이 유일한 룰 이었다.
재앙은 정말로 심각했다. 세레스도, 지구에게도. 지구는 각 나라의 몇 개의 중심 도시가 휩쓸렸다. 더미들은 사람을 잡아먹고, 워커나 버디들을 잡아먹으며 성장했다. 학습을 하고, 개체수를 늘리고. 사람들은 공포에 찾았다. 텐진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싸우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쉬면, 잠시라도 벗어나면 다른 생각이 온 몸을 지배했다.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 것 인가. 그것이 그 때 당시의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헤르메스의 구조부원들도 많이 죽었다. 같이 싸우던 동료들은 쓰러졌고,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도 쓰러졌다.
겨우겨우 이어진 인터넷 방송을 통해 구조부들의 전투 장면이 찍힌 적이 있었다. 재앙 당시 텐진은 19살 정도 쯤 이었지만, 초능력의 부작용으로 인해 제대로 제 나이 때로 보이지 않았었다. 찍혀 있는 전투 장면에는 딱 봐도 앳된 소년이, 제 주변에 떠 있는 정육면체 같은 것들로 순식간에 몇 십 개체의 더미들을 폭격하는 장면이었다. 한 버디가 스크린을 통해 틀어준 영상을 보며 시몬의 머리는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이 지나쳤다.
몇 번의 큰 전투가 있었다. 그 속에서 부상자도, 사망자도 나왔다. 텐진은 그런 전투 때마다 활약했다. 이전번 전투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돌아온 임시 본부에서 텐진은 지나가던 의무반에게 받은 재생용 밴드를 제 손목을 휘감으며 후드를 푹 눌러썼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들었다. 임시 본부로 귀환하는 길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졌던 것 같았던 건, 기분 탓이 아니었구나. 누적된 전투로 인해 피로감이 있었다. 텐진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누군가 와서 담요 같은 걸 덮어주는 것도 같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텐진은 겨우 졸린 눈을 비비고는 멍하니 상체를 들었다. 담요를 덮어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는 겨우 전파가 잡히는 해적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으어……페퍼 형.”
“전투 명령 아직 안 떨어졌는데, 좀 더 자지 그러냐.”
“……그냥 눈이 떠졌어…….”
“그거 나 때문은 아니지?”
텐진이 겨우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으며 “아닐 걸, 말 그대로 그냥 떠졌어.” 라고 대답했다. 흘러내리는 담요를 겨우 붙잡아서는 몸에 두른 채로 텐진이 몸을 웅크렸다.
“왜 그래? ……동영상이나 소문이 신경 쓰여서 그래?”
“……하하. 내가, 뭐, 그런 거 신경 쓸 애처럼 보이나. 그냥, 좀 이상한……꿈을…….”
누군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발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타인의 피로 얼룩이 된 의무 제복을 입은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잔뜩 엉망이 된 얼굴로 울고 있었다. “텐, 텐진, 텐진……너희, 아버지가……!” 그 말에 그 때 당시 텐진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그 외침을 말을 들으며, 텐진은 생각했다. 아. 이런 불길한 꿈은 빗나가는 일이 없구나. 하고.
마을 사람들을 도망치게 해놓고, 본인만이 남았다고 했다. 마을의 비밀통로로 겨우 도망쳐 온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함께 남았다고.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만 같다. 생전에 아버지가 제게 했던 말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재앙은 끝나지 않았고, 지금은 전시나 마찬가지였고, 죽는 사람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돼. 헤르메스가 그렇게 말했었다. 네가 원한다면 어디든지 도망가게 해줄게. 텐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났다. 기습입니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쓰러져가는 병원 건물. 임시 본부. 그곳을 노리고 나타난 녀석들은 이미 강해질 때로 강해진 더미들이었다. 건물의 위로 급강하했다. 헤르메스는 유일신이고, 불사의 존재였지만. 지켜본 바에 의하면 헤르메스는 인간사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말 그대로 신이니까. 자비와 자애의 상징. 그저 그는 이곳을 지키고, 그들의 곁에 있었을 뿐 이었다.
“……싫어.”
“텐진.”
“……도망치기, 싫다는 이야기야.”
텐진이 머리 위로 팔을 뻗자마자 그대로 지붕이, 그리고 급강하하던 더미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재로 변한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 날, 텐진은 스스로 지옥의 구덩이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재앙의 마지막 전투로 기록 된 전투에서 텐진은 눈을 잃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텐진 조차 알지 못했다. 눈을 거의 움켜잡아 누르며 텐진은 바닥을 뒹굴었다. 누군가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텐진의 가까이 다가와 급하게 지혈을 해대며, 의료반을 불렀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생존자를 확인하고, 부상자를 옮기고. 사망자의 유해를 수습하고.
텐진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있던 때였다. 텐진은 꼬박 2개월 정도를 잠들어 있었다. 아직 전부 해결된 것도, 수습이 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텐진의 마지막 기억에서 보다는 다소 세상은 해결되어 있었다. 재앙 중기 쯤 생겼던 조난 본부는 IDC라는 이름을 얻어 정식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나라들은 모두가 연합하여 세레스 같은 체계로, 조직적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텐진에 대한 세상의 평가 또한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영웅이다, 아니다.
텐진에게는 더 이상 고향이 없었다. 항상 의지하던 아버지도. 그를 보호해줄 곳은 이제 헤르메스 뿐 이었다.
* * *
매일 같이 찾아오는 곳이 있었다. 헤르메스 산하의 의료 본부. 그리고 그곳의 특별 관리 병동. 재앙 이후에 몇 되지 않은, 살아남은 전우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니, 물론 모든 자들이 그 병동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 관리 병동에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서,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한…….
도착한 병동이 시끄러웠다. 평소와 달리. 조용해야 할 병동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의사, 간호사 모두가 뛰어 다니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고, 그들이 찾는 그 누군가가 자신이 방문하러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호사 중 누군가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 들은 텐진은 제 턱 주변을 가볍게 쓸어내리고는 “어디 숨어있는지 알 거 같으니까, 도울 게요.” 그 말에 그녀는 그저 계속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인사할 뿐 이었다.
그녀를 찾은 곳은 사람이 없는 병실의 구석이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에 누구도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가려니 어디서 찾았는지 주사기를 휘두르며 주변을 위협했다. 텐진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켰다. 금발 머리카락이 아주 엉망이었다. 눈동자는 흰자위가 검게 변했고, 눈 색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오지마, 오지마!“ 라고 크게 소리치며 그녀는 계속 팔을 휘둘렀다.
“……글랜다. 나야.”
그녀가 바닥에 들고 있던 주사기를 내던지며 텐진의 앞까지 바로 달렸다. 텐진의 양팔을 우악스럽게 붙들면서 “텐진, 진아, 큰일 났어, 이대로는 모두가, 모두가 죽어버려.”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그녀의 모습을 텐진은 말없이 바라봤다. 제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잡아떼면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끝났어. 다 끝났어, 누나.”
“…………아…….”
그녀의 눈이 넋이 나간 사람마냥 커졌다. 크게 뜬 눈으로 텐진을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주변을 돌아봤다. “내가, 내가 또, 아, 내가…….” 그녀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그 몸을 붙잡고 지탱해주며 텐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무너지며 또 다시 울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텐진은 그저 침묵했다. 올 때 마다, 입 안이 쓰게만 느껴졌다.
돌아오니 반기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내용의 뉴스는 아닌지라 헛웃음만이 나올 뿐 이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한 참이나 의미 없는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재앙 이후에 회복기를 가지던 중에 여기저기에서 포섭하려고 야단이 났었지. 그리고 이어진 뉴스에 텐진은 결국 스크린을 완전히 꺼 버렸다.
재앙은 약 1년~2년 동안 이어졌고, 그 날 회복되지 못한 상처를 가진 자들은 많았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 유해를 찾지 못한 자들 또한 많이 있었다. 그 날, 같이 싸웠던 자들의 대부분은 죽거나, 살았더라도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재앙 이후, 우편부의 지원자는 늘었지만 구조부의 지원자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뭐, 그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
입 안이 썼다.
갑작스럽게 뚝 떨어진 기온과 동시에 눈발이 휘몰아쳤다. 하필 회의인지 뭔지도 이럴 때야. 헤르메스의 기관장은 헤르메스 본인이지만. 신이기 때문에 인간사에 큰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기 때문에 이런 공식적인 외부 모임에는 절대로 얼굴을 비추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자리는 본디 시몬이 나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텐진이 대타로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도착한 고층빌딩은 출입자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철저하게 본인임을 확인 한 뒤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본인임을 확인 하고 건물의 안으로 들어선 후 텐진은 푹 눌러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한 번 기지개를 했다.
“오, 이게 누구야. 또 대타로 오셨나?”
비아냥거리듯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텐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상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텐진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상대방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IDC 건, 헤르메스 측 관계자들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말이야.”
“아. 그래. 나는 그거 말고 다른 소문이라면 아는데.”
“무슨 소문?”
“그 뇌물을 준 사람이 어디의 누구씨라는 이야기 말이야.”
텐진이 눈을 가늘게 떠, 상대를 노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상대방이 조금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미 소문. 파다하던데?” 텐진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상대가 또 다시 움찔거렸다. 제대로 받아치지도 못할 거면서, 대체 왜 남의 성질머리를 긁는 거야. 텐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움찔거리는 상대방을 뒤로 한 채로 걸음을 옮겼다.
지루한 내용. 지루한 이야기. 인류에 위협이 되는……. 이번 추모 행사는 그래서 진행하는 겁니까. 같은 매 년, 매번 떠오르는 이야기. 그리고 갑작스럽게 화두에 오른 것은 IDC의 대한 건 이었다. 서로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를 해댔다. 언성이 높아지고, 곧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되었다.
“IDC 설립에 동의 한 자들은 여기 많이 있잖소. 이번 사태에 뭐 할 말 없는 거요? 그동안 뇌물을 받은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지는 않았을 테고!”
큰소리에 몇 명의 불편한 시선이 소리를 지른 자에게로 향했다. 그 외침에 내내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던 텐진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 번도 의문을 제기 하지 않았던가?”
툭 내뱉은 말에 일순간 회장이 조용해졌다. 소리를 쳤던 남자가 텐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그러는 너희야 말로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IDC가 그렇게 된 것은 설립에 동의한 자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나는 동의 못해주겠는데.”
텐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의자에 등을 푹 기대어 앉았다.
“분명 몇 몇 의원들이 조사해달라고 몇 년 전부터 노래를 불렀잖아. 근데 그거에 불응한 건 너네 감찰국이고. 너희야 말로 뇌물 받았냐?”
“……텐진!”
“내가 틀린 말 했어?”
좀 전보다 더욱 싸늘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텐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 이었다. 불편한 시선이 오고갔다. 그런 시선 속에서도 텐진은 여전히 심드렁한 태도를 취하며 시선을 마주했다. 결국 추모 행사는 어떤 한 재단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는 것을 결정 됐다. 그 뒤에는 더미의 출현 빈도와 그에 따른 피해 관련 보고 같은 것들이 쭉 이어졌다. 지구와 세레스 각각 지역에 대한 통계.
모든 게 끝나고 텐진은 홀 안의 테이블에 엎어진 채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복귀 하셔야죠?” 라고 미니 챗이 텐진의 주변에 붕 떠올라 말을 걸었고, 텐진은 “밖에 눈보라 그쳤어?” 라고 되물었다.
“네, 지금은 잠잠해졌어요.”
“내가 잘못했나?”
“무엇을요?”
“오늘 자리에서 내가 한 말 말이야.”
“저는 그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려워요. 시몬 부장님이나 헤르메스님께 여쭐까요?”
“아냐, 됐어.”
그 물음에 텐진이 바로 팔을 뻗어서 미니 챗을 붙잡았다. 챗을 챙겨서 홀을 빠져나온 텐진은 후드를 푹 눌러썼다. 복잡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다시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었다. 텐진은 괜히 양 손을 쫙 펴서 하염없이 손바닥만 바라보다 결국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텐진의 집안은 차원 충돌 이후로 모든 사람들이 초능력자로써 각성한 집안이었다. 그리고 텐진의 집안은 오래전부터 몇 몇 사람들과 함께 산속의 깊은 곳에서 하나의 촌을 이루며 살았다. 그곳은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이 나가서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한 번에 구입해오는 것이 철칙이었다. 깊은 산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생활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어린 텐진은 그것이 익숙했고, 마을의 사람들 또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집단성이 강했으며, 서로 간의 책임을 질 줄 알며, 양보와 서로 간의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오면서 그 마을에는 어떠한 다툼도 있던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오래 된 동화나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마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대뜸 한 외지인이 찾아왔었다. 바로 텐진의 집에. 텐진의 어머니는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 외지인을 반겼다. 텐진의 아버지는 외지인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그는 부모의 뒤에 있던 아직 어린 텐진을 한 번 살펴보고는 「좋아, 그렇게 하세.」라고 흔쾌히 대답하고는 사라졌다. 마치 바람처럼.
외지인이 사라지고 나서야 마루에 앉아 있던 텐진이 부모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옷자락을 쭉 잡아당기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 아직은 네가 어리니까 조금만 때를 기다려달라고 했어.”
그 때, 텐진의 나이 12살이었다.
재앙은 수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더미들에게 인간은 그저 먹이에 불과했고, 그들은 몇 개의 도시를 점령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가 울었고, 아이를 잃은 부모는 허망해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당시의 텐진에게는 방어라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혹은 타인이 공격을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상대가 공격할 틈을 주지 마라. 그것만이 오로지 텐진에게 있어서의 한 가지 방법이었다. 더미의 공격이 이어질 때는 더미를 제거하는 일을 하는 반면에, 전투가 한 바탕 끝난 자리에서는 그대로 수색이 이어졌다. 시체를 찾고, 생존자를 찾고, 부상자를 찾고.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부상자 중에서는 더미에게 공격당한 신체의 일부가 오염되어 더미에게 지배당하는 자들도 나오기도 했었다. 대부분은 부상 입은 부위가 빠르게 오염되어 오염된 부위를 제거하거나 빠르게 백신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됐었다.
모두가 한 번에 폐허가 된 도시를 수색했다. 잿더미가 된 도시를 수색하면서, 무너진 자재들을 뒤적거렸다. 한번 무너진 것들은 또 다시 무너지기 쉽다. 수색을 하던 와중, 자재가 또 다시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자재에 깔리려나 싶었던 타이밍에 텐진의 3배는 되어 보이는 체격의 남자가 무너지는 자재를 멀리 쳐냈다. 민간인이 본다면 가히 경악스러운 장면이었지만, 텐진은 무덤덤한 얼굴을 한 채로 사내를 바라봤다.
“……진짜 안 아파?”
“상처 자국도 하나도 안 난다. 이 몸이 돼서 좋은 점이라고는 그거 하나야. 그러는 꼬맹이는 괜찮고?”
“……별로. 심각하진 않은데. 나보다는 페퍼 형 뒤에 붙어 있는 게 좋지 않나. 아저씨.”
“뭐 그 양반 옆에도 다른 녀석이 붙었으니까. 너야 말로 다치지 않게 조심해. 체질도 특이해서 치료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 들었어.”
그 말에 텐진은 별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뒷목에 붙어 있는 재생밴드를 쓱 만지작거리다 손을 내렸다. “누가 살아 있을까?”라고 텐진이 툭 말을 내뱉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런 사람들을 찾는 게 우리 일이지.”라고 대답했다. 텐진의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가만히 옆에서 폐허가 된 집들을 수색하는 텐진을 바라보다 툭 입을 열었다.
“넌 오늘 수색 끝나면 가서 잠 좀 자라.”
“……….”
“엄청 피곤해 보인다.”
텐진은 남자를 바라보고는 적당히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날은 몇 명의 생존자를 찾아냈었던가. 몇 명의 생존자를 찾아내고, 그 생존자들이 중간에 눈을 감고 말았던가.
재앙은 1 여 년의 끝에 끝났다. 그들의 우두머리 급으로 추정되는 더미가 형체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모습을 완전히 잃게 되면서 그들은 물러갔다. 그리고 재앙 이후 텐진은 세레스와 지구 양측에 ‘영웅’으로 불리고 있었다. 물론 영웅은 텐진이 아니더라도 많이 있었다. 재앙에서 싸운 자들은 모두가 영웅이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가장 많이 매스컴에 노출 되었고,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는 이유로 텐진은 가장 많이 그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영웅이라고 그를 옹호하는 자들, 무작정 욕부터 하는 자들. 헤르메스에서 구해 준 집으로는 매일 같이 감시의 눈이 따라 다녔다. 각 나라의 관리 기관 이나 비밀 기관에서 헤르메스에스가 아닌 자신들의 기관으로 오라는 온갖 회유와 협박의 가까운 이야기들도 들었다. 결국 텐진은 구해 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텐진을 강하게 옹호하던 마을 사람들은 지구가 아닌 세레스를 택했다.
그리고 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 피해가족들은 텐진과 헤르메스 기관에 감사함을 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헤르메스 기관이나 텐진을 향한 공격을 하는 자들은 더러 있었고, 텐진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경 쓰고 싶지 않아한 것이 더욱 가까운 표현일지도 모른다.
붕대로 감긴 눈을 상처가 가득 자리 잡은 손으로 괜히 두드렸다. 너스 제복을 입은 여자가 벗어두고 있던 검은 장갑을 건넸고, 텐진은 고맙다고 말하면서 장갑을 받았다. 너스 제복에 하얀 랩 가운을 걸치고 텐진의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차트와 텐진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 툭 입을 내뱉었다.
“넌 살아있는 게 진짜 기적이다. 그 때 최초 발견자가, ……페퍼구만. 녀석이 응급처치를 잘하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진짜 기적이다. 네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까 검사 결과만 보고 이야기 해주겠는데……. 이건 진짜 깔끔하게 뽑혔다는 말 말고는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없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텐진을 빤히 바라보더니 곧 “보통은 쇼크사 해.”라고 말을 내뱉었다. “그 이야기는 들었어.”무덤덤한 얼굴을 하고는 대답하는 텐진을 향해 남자는 길게 한 숨을 내뱉더니 “우리 꼬맹이는 자기가 무지 위험했다는 걸 알기는 아는 걸까?!”라고 소리치듯 말했고, 텐진은 잠시 시선을 옆으로 두더니 “으음.”이라고 앓는 소리 비슷한 것을 냈다.
“갑자기 한쪽 눈이 없어졌으니까 여러모로 불편할 거야. 시야도 좁아졌을 테고, 거리감도 없을 거고. 원한다면 의안을 할 수 있도록 해줄게. 너 계속 일 할 거야? 여기서. 국장은 그만둬도 괜찮다고 이야기 했지?”
“……응.”
“네가 그만 둬도 네 주변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지원은 끊지 않을 거라고도 약속했고. 이참에 그냥 확 관둬. 그러면 국가 기관 녀석들도 너한테 관심을…….”
“반대일 거야.”
“엉?”
남자의 물음에 텐진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내가 그만 두고 숨으면, 날 찾아 낼 거라고. 그리고 내가 오히려 숨는 게 사람들한테 민폐야.”텐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내렸다.
“텐진. 누구도 네게 희생을 강요 안 해. 네가 싫으면 하지 마.”
“도망치기 싫어. 희생정신이니, 뭐니 그런 건 난 몰라. 딱히 정의감이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도망치기 싫은 거야.”
“그냥, 이 현실이 거지같다고 도망치기 싫은 거라고.”텐진은 그렇게 툭 내뱉으며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다가 손으로 붕대가 감긴 눈을 감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남자는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넌 진짜 세계 최고 고집쟁이야. 좀 도망쳐도 되는데. 아무도 강요도 안하는데. 그 눈으로는 앞으로 계속 일하기 힘들 거야.”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곧 패드로 한 설계도를 보여줬다.
“안드로이드 용 의안을 인간에게 맞게 개조한 거야. 특수 제작이라 제작비용이나 수술비용이 어마어마하지. 실제로 이걸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일반 의안이랑은 달라. 작은 소형 컴퓨터 내지 로봇이 눈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내가 이걸 너에게 보여주는 이유는……말 안 해도 알지? 꼬맹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 말에 텐진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마워.”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것이 텐진이 20살에서 21살이 되기 전의 이야기 중 일부.
소년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더라면, 그저 평범하게 어른이 되고. 평범한 가정을 차리는 것 이었을지도 몰랐다. 깊은 산속에서, 마치 오래된 이야기에서나 나올 것만 같이 살던 소년의 가족은 그 어떤 가족보다도 행복했다. 행복을 누렸다. 그 날, 차원의 충돌로 인한 여파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계속, 계속 평범하게 살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날, 충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소년과 소년의 가족들의 삶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단지, 소년의 어머니는 먼 훗날 소년에게 찾아올 일들이 그저 가혹하다고 느꼈을 뿐.
너는 큰일을 할 사람이란다. 소년의 어머니가 항상 소년에게 해주던 말이었다. 소년은 그 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소년은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그 날 이후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 미래는 제법 잘 맞았다. 확률적으로 보는 것뿐이고, 꼭 그 일이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인데도.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잘한 결정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이는 없었다. 왜냐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텐진 스스로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으니까. 저 질문은 전쟁이 시작된 때부터 슬금슬금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날은 유독 더 까만 하늘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것만 같은 하늘. 텐진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다, 곧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발밑에는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더미가 있었다. 이마가 찢어졌다. 피가 흘러 내렸다. 소매로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내며 텐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제 다 귀찮아. 힘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싸워도, 싸워도. 녀석들의 수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힘이 빠진 눈으로 제 발밑에서 발버둥을 치는 더미를 바라봤다. 얼마 전에, 또 다시 동영상이 올라갔다. 이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그런 중계를 하는 녀석들이 아직도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 거, 못 찍게 해야 하는데. 하지만 텐진은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어떻게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 동영상을 생각하니 또 지치는 것만 같았다. 한바탕 싸우는 모습. 시민들을 구하는 모습. 영웅이라느니, 결국 그들도 똑같다느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었던 것만 같다.
“………텐진!”
저 멀리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으득. 더미가 밟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째서인지 계속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 귀찮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 까지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제 이름을 부른 사람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텐진의 팔을 잡아당겨 제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형, 피 못 보잖아.”
“……별로 좋은 건 아니지만, 보다보니 익숙해졌거든? 아이고. 의무팀 또 난리 나겠네. 그보다, 너……괜찮아?”
“……뭐가?”
“……아니, 방금 좀.”
위험해보였어.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는 텐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 머리에 손을 올리며 쓰다듬었다. 텐진의 마을이 없어지고, 텐진의 아버지가 죽고. 그 일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텐진이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포기할 거야?”
“……그건, 싫어. 도망치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하지만 힘들어.”
“텐진.”
“……끝이 안보여. 언제가 끝이지?”
“……그, 그 지금 이 녀석들의 보스를 죽이면?”
텐진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곧 제 팔을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고는 몸을 돌려버렸고, 그는 다시 재빠르게 텐진을 붙잡았다. “어딜 가려고!”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텐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페퍼 형 말대로 하려고.”라고 툭 말을 내뱉었다.
“안 돼, 넌 지금 지쳤어.”
“형,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어. 잠깐 휴식을 취해, 그 동안 우리가 찾을 테니까.”
괜한 말을 해버렸다. 페퍼 더블에이는 난생 처음 후회라는 걸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가뜩이나 잔뜩 부담을 안고 있는 녀석인데. 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페퍼는 계속해서 “어쩌지, 나는, 죽는 게 좋은 게 아닐까…….”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 죽고 싶어요?”라는 살벌한 말에도 페퍼는 그저 같은 우는 소리를 했다. 어휴. 살벌한 말을 했던 상대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말린 건 잘한 거예요, 페퍼.”
“……그, 그래?”
“네. 저 상태로 나갔다면, 아마……텐진이 죽어버렸겠죠. 그럼 인류는 정말 희망을 잃어버렸을 테고요.”
“……그보다 시몬은? 없나?”
“그 사람 바빠요.”
“……있지. 나는 아까 처음으로, 텐진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아니면, 망가져버릴 것 같다고.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대로 벽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온 페퍼가 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았다. 기분이 푹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아니, 가라앉고 있었다.
헉. 헉.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피가 흥건했다. 지혈을, 지혈을. 정신을 추스르며 지혈을 하며 텐진을 안아 올렸다. 적어도 이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어서 이 지역에서 벗어나야. 텐진의 얼굴반쪽이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죽으면 어떻게 하지. 아냐, 아직 숨 쉬고 있잖아. 제 품에서 겨우 내뱉는 텐진의 숨소리가 너무나도 미약했다.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만 같이.
텐진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눈 하나를 잃고, ‘세이렌’이라는 더미를 없애버렸다.
가족을 잃고, 세상을 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세상은 두 가지의 의견으로 나뉘어졌다. 텐진에게 영웅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텐진은 화를 내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새로운 집을 얻었지만 텐진은 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각 국가에서는 그를 데려가기 위해서 온갖 말과 돈들이 오갔다. 텐진은 결국 부랴부랴, 헤르메스로 도망쳤고, 그에게는 이제 그곳이 집이었다. 하지만 텐진은 한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의무실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문을 열고 멀거니 서 있는 페퍼를 바라봤다.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했잖아.”텐진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나갈까?”라고 페퍼가 되물었고, 텐진의 고개가 다시 그를 향했다. 텐진은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페퍼는 슬쩍 텐진의 앞으로 다가와서는 작은 선물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뭘 사왔게.”
“……필요 없어.”
“……저기, 선물 해주는 헤드리스 앞에서 그런 잔인한 말은…….”
페퍼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곧 작은 선물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든 건 평범한 오리 인형이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오리 인형.
“……이게 선물이야?”
“……응. 별론가?”
“……완전 별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텐진은 상자에 들어가 있는 오리 인형을 집어 들었다. 인형은 말랑말랑했다. 손으로 인형을 주물거리면서 텐진이 페퍼를 살짝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