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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욘드 네타있음

* 프랭클린호 관련 이야기 날조했음 

* 쿠션 많이 깝니다 포스타입 업데이트 후 티스토리 백업 





























함선을 처음 마주했던 날. 그는 그 날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웅.

그것이 발타자르 에디슨에게 붙어 있는 칭호였다. 당당하고, 다른 이들을 이끌며, 누구보다도 용맹한 군인. 에디슨은 훌륭한 군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우상이며 영웅이었다. 그는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몸을 바쳐 싸웠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인류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에디슨은 과장된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웃었을 뿐이었다. 제복에 달린 명예의 상징. 그리고 찾아온 평화 속에서 그는 평생을 몸담고 있던 공격대가 해산했다.


없어진 공격대의 자리를 대신 한 것은 행성 연합이었다.


에디슨은 이 변화를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도 버겁고, 힘겨웠다. 그는 많은 시간을 전장 속에서 보냈고,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서로를 물어뜯고, 총을 겨누던 자들과 평화의 손을 잡으라니. 에디슨에게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려운 문제였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깊은 절망감이었다. 분노가 아닌 절망감. 영웅이라는 것도 결국은 꺼풀에 불과하다.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면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은 없고, 자신의 한 행동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무엇을 위하여 공격대에 지원했었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술이 쓰게 느껴졌다. 그는 유리잔을 살짝 기울여 아직 남아 있는 술을 바라보며 그저 바람 빠진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술집에는 오래된 재즈음악을 틀어놓았다. 제목이 뭐라고 했었더라. 워낙 외곽에 있는 술집이라 그런지 손님이라고는 에디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유리잔에 남은 술을 다 비우고는 다시 잔을 내렸다. 다시 술을 따라 마시려는 찰나에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쯤 마시지 그러나, 에디슨.”

“요즘 이거 때문에 삽니다. 이젠 더 나갈 일도 없으니 술이라도 마셔야죠.”

“자네는 여기서 술이나 마시고 있을 인물이 아니야.”


그 말에 에디슨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과거 공격대에 있었을 적, 자신의 상관이 이제는 스타플릿, 그리고 행성연합의 마크가 달려 있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진짜였군요.” 에디슨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그는 에디슨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그가 집고 있던 유리잔을 빼앗아 가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 쪽에서 먼저 권유하더군. 이제 막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가장 인재가 필요할 때이지.”


그 말에 에디슨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가 유리잔에 술을 따르며 한 잔을 완전히 비워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은 변했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해가겠지. 살다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네.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이 무엇인가 싶을 때도 있고.”


에디슨은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 8시. 셔틀을 타는 곳 정도는 알고 있겠지? 기다리고 있겠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뇨, 저는 안갑니다. 안가요.” 라고 에디슨은 신경질을 부리듯 대답했고 그 말에 가게의 문을 나서던 사람은 “아니, 자네는 오게 될 거야.” 라고 짐짓 단호한 어투로 대답했다.




염병. 멍청이 에디슨. 에디슨은 속으로 자신을 향한 욕을 엄청 퍼부어 대면서 바이크를 몰았다. 자신 스스로도 이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는 본능에 가깝게 바이크를 몰았고, 셔틀 정거장에 도착했다. 스타플릿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그들 중 유일하게 그만이 제복이 아닌 차람이었고, 바삐 걸음을 옮기던 자들은 이따금씩 에디슨을 쳐다봤다. 섞여 있던 자들 중 과거 에디슨의 상관이 그를 발견하고 어깨를 으쓱이곤 이리오라 손짓하며 웃었다. 에디슨은 바이크를 아무 곳에나 세워놓고는 그를 향해 다가가더니 “아직 확답 한 건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다. “알아. 하지만 그걸 보면 자네 생각도 바뀔 거야.” 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그게’ 뭔데요?”

“‘우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걸세.”


“그걸 위해 우주로 가는 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결국 그냥 저보고 스타플릿으로 들어오라는 거죠.” 에디슨이 다소 심드렁해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는 하하. 하고 크게 소리 내어 웃더니 에디슨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어차피 자네도 결국 이렇게 오지 않았나.” 그 말에 에디슨은 적절한 대답을 생각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다소 복잡한 표정에 그가 웃으며 “세계를 넓혀보게. 에디슨.” 이라고 또 다시 말했고 에디슨은 역시나 대답하지 않았다.


셔틀을 타고 도착한 정거장에서 에디슨은 더욱 눈에 튀었다. 모두가 스타플릿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에디슨만 아니었다. “여기서 뭘 보여주겠다는 겁니까.” 라고 다소 딱딱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나를 따라와.” 라고 말하면서 남자는 에디슨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착한 곳에는 함선.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의 함선이 있었다.


그 함선을 본 순간, 에디슨은 함선에게 매료되었다. 매료되었다는 말 말고는 어울리는 표현을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태. 우주에서 건조 중인, 우주의 탐사를 위해 만들어진 함선.


“이름은 프랭클린호라네. 에디슨.”


한참이나 프랭클린 호를 바라보고 있던 에디슨의 표정이 그를 향했다. “자네에게 맡기고 싶어 해.” 그 시선에 그는 그렇게 대답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함선에 대한 이야기는 이 함선의 기술책임자를 통해 들어보겠나? 아. 마침 저기 있군. 앤더슨.” 부름에 고개를 돌린 것은 젊은 남자였다. 스타플릿 제복 어깨의 견장 색은 붉은 색이었다. “yes, sir." 대답하는 목소리와 얼굴 표정이 유난히도 부드러운 사내였다.


“전 스타플릿에 안 들어갑니다.”

“이걸 보고서도? 이미 자네는 프랭클린 호와 사랑에 빠졌잖나.”

“저는 영웅의 귀환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함께 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어느 새 그들의 사이로 다가온 앤더슨이 에디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영웅이라니. 의미 없는 호칭이지.” 라고 대답하며 에디슨은 잠시 앤더슨의 손을 바라보다 곧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악수했다. 두 사람이 서로 인사하는 사이 제독은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자리를 비켰다. 에디슨은 가볍게 목례했고, 앤더슨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라지는 제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스타플릿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라고 툭 말을 뱉었다.


“나는 군인이었다. 계속 싸워왔고. 근데 이제 와서 갑자기 손을 잡고 평화를 외치는 꼴이 우스울 뿐이야.”

“그 심정은 저도 이해합니다. 누구나 혼란스러울 때가 있죠.”

“자네는 길을 찾았고?”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 말에 에디슨의 시선이 앤더슨에게도 향했다. 똑바로, 그 눈을 마주 보면서 에디슨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어렵군.” 긴 고민 끝에 나온 대답에 앤더슨은 다시 또 웃으면서 “항상 어렵죠.” 라고 답했다.




그는 여전히 스타플릿에 가지고 있는 의문점이 많았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스타플릿의 제복이 다소 어색했다. 전투를 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탐사를 위해 오르는 것 또한 어색했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어색함 투성이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다소 불편한 표정을 한 채로 리프트에 올랐을 때, 옆에 있던 여성이 물어왔다. 어깨 견장이 파란 색이었다. 과학인가? 에디슨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라고 말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승선 전에 스타플릿에서 받았던 대원 리스트에서 본 것 같은데. 에디슨이 잠시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이 되자,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러니까 이름이……” 하고 말을 길게 뺐다. 곧 그녀와 그가 동시에 다시 입을 열었다.


“제시카. 제시카예요.”

“제시카 이었던가.”


동시에 터진 말에 두 사람은 악수를 한 채로 한 동안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기억났어. CMO 였었지.”

“네, 맞아요. 조심하세요. 저 잔소리꾼이거든요.”


제시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고, 에디슨도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 그 날은 프랭클린 호의 역사적인 첫 출항이었다.


그리고 첫 출항 이후, 프랭클린 호는 어느 날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 라는 보고와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스타플릿은 이후 그들의 마지막 신호를 추적하여 그들을 찾기 위해 나섰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함선의 신호는 더 오지 않았고, 스타플릿의 수색도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은 지나가기만 했다.





수 없이 조난 신호를 보내보아도, 스타플릿에서 돌아오는 응답은 없었다. 교신이 닿지 않을 만큼 먼 우주에 왔나?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나? 함선의 기술 총 책임자인 앤더슨 조차도 알지 못하는데, 에디슨이라고 그 이유를 알 리가 없었다. 사실 상, 어느 정도 조난을 당하더라도 프랭클린 호에 있는 비상식량이나 보급품으로 생존은 가능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행성에 불시착이 아닌 불시착을 하고 나서, 스타플릿에 보낸 조난 신호에 대한 답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24시간 안에 확신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선임장교들끼리는 브릿지에서 하루에 한 번 이상 긴급회의를 했다. 현재의 통신 범위가 어디까지 되는지, 프랭클린 호의 수리 상황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앤더슨이 말하면 현재 대원들의 건강상태를 제시카가 보고했고, 그 뒤에는 각 자 자신들이 맡고 있는 일에 대해서 보고했다.


에디슨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원들의 건강상태였다. 이곳이 스타플릿이고, 지구였다면 병에 걸려도 금방 나을 수 있겠지만. 지금 그들의 상황은 달랐다. 모든 이들이 나가고 브릿지에 제시카와 단 둘이 잠시 남았을 때 그녀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최악을 대비해야 할 수도 있어요. 라고.


그리고 최악의 시기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피곤함에 잠시 선잠이 들었었던 것 같다. 공기를 깨는 것만 같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소리에 에디슨은 놀라 눈을 떴다. 다급하게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어간 장소에는 엎드려서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는 대원과 그런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제시카가 있었다.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에디슨의 등장에 양 옆으로 갈라섰다.


“……괜찮아. 일단 바로 누워보자. 응? 누가 가서 키트 좀 가져와!”


제시카가 그렇게 외쳤고, 급하게 의료부 대원 중 한 명이 함선의 안에서 응급 키트를 찾아 가져왔다. 검붉은 핏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시카는 최대한 멀쩡한 표정을 한 채로 대원을 살폈지만, 에디슨은 알았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아마 제시카는 에디슨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제시카의 바로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앤더슨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제스.”

“할 수 있어. 괜찮아, 살릴 수 있다고!”

“제스. 늦었어.”


알고 있잖아. 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제시카의 손은 이미 피범벅이었다. 땀에 머리카락이 다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땀인지 눈물일지 모를 것들이 섞인 채로 그녀가 앤더슨을 바라봤다. 앤더슨의 뒤에는 에디슨이 있었고, 제시카의 눈이 그에게로 까지 향했다. 최악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녀는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고, 에디슨은 그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것은 첫 죽음이었다.





에디슨은 홀로 프랭클린 호를 마주했다. 가장 처음. 프랭클린 호를 마주했을 때. 그는 그 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리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프랭클린 호는 그에게 있어 희망이었고, 기적이었으며 이정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대변해주지 못한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함선. 죽어가는 대원들. 조난 신호는 닿지 않는다. 이 미지의 우주에서, 영토에서 자신들은 이대로 죽어가야 한다. 에디슨은 그저 프랭클린 호를 바라봤다.


잘 있게. 친구. 들리지도 않을 인사를 하며, 그는 떠나기로 다짐했다. 대원들을 위해서라면.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그들 뿐 이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우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