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5 포스타입 업로드.
“가끔, 꿈에 나와요. 같이 일했던 동료였으니까요. 이름이 뭐였더라, 이젠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초췌한 얼굴을 한 채로 레드셔츠를 입은 대원은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메디베이의 침대에 겨우 걸터앉은 채로 느릿하게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레너드는 그에게 차를 한 잔 권했다. 그는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결국 레너드가 내민 잔을 받았다.
“여기 놈들은 하나 같이 고집불통만 모여 있어. 어디가 불편하면 바로, 바로 메디베이로 와야 할 거 아니야. 그래야 내 걱정도 조금 덜고.”
잔에 담긴 차를 조심스럽게 마시는 그를 보며 레너드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 말에 레드셔츠을 입은 대원도, 레너드의 옆에 있던 블루셔츠를 입고 있던 대원의 눈이 잠시 레너드를 향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은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거겠죠. 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단지 두 사람의 시선에 레너드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을 뿐. “잠을 조금 못자는 것뿐인걸요. 닥터.” 레드셔츠를 입은 대원의 말에 레너드의 얼굴에 더욱 깊은 주름이 잡혔다. 잔뜩 인상을 쓴 그는 속으로 환자다, 이 놈은 환자다. 라는 것을 몇 번인가 생각하며 손끝으로 자신의 미간을 꾹 누르며 대답했다.
“잠을 잘 자는 것도 중요해. 불면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옛말도 있다.”
레너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바라봤다. “그냥 속에 있는 거 털어놔. 그게 편해. 네가 지금 잠을 못자는 건 약간의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이 섞여서 그런 거야.” 차가운 듯, 덤덤한 것 같은 말투로 말하면서도 레너드의 시선은 계속 그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레너드가 한 손을 들자, 그 옆에 서있던 의료부 대원이 그에게 패드를 건넸고, 그는 그의 의료기록을 추가했다. “나는 정신과 전문은 아니니, 원한다면 스타플릿 쪽에 연락해서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해줄게.” 레너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바라봤다. 그는 고민하는가 싶더니 대답하진 않았다. 레너드는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눈썹 한 쪽이 올라갔다.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입술이 열리며 그는 느릿하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종종 저렇게 불면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기절해서 실려 오는 경우도 있었다.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도 겨우겨우 걸어서 오는 경우와 비교적 멀쩡한 걸음으로 오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뉘었다. 불면의 이유는 다양했다. 그냥 잠이 안와서, 일을 하느라 잠을 못 잤는데 그게 계속 이어져서, 잠을 자면 자꾸 죽은 가족이나 친구가 보여서, 잠을 자면 자꾸 친했었던 대원들이 꿈에 나와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상담을 해주거나, 그들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는 했다. 물론 레너드는 전문적인 상담의도 아니었고,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원한다면 그는 간단한 상담을 했다. 말이 상담이지,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오늘 불면을 호소한 대원들은 7명 정도. 다행스럽게도 적었다. 언젠가 또 불쑥 많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지만. 그는 기록을 정리하며 겨우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개인 쿼터에서 일을 정리하고 있는 꼴이라니. 기록들을 마지막까지 꼼꼼히 살피던 그는 눈가를 꾹 눌렀다. 이러다가 내일의 환자에는 자신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그는 그만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주변은 온통 어두웠는데, 어둠 속에서도 사람의 뒷모습만큼은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레너드는 그 뒷모습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 그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팔을 뻗어 그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짐?” 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서 어깨를 건드리자, 그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쿵. 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꽤 오랫동안 울렸고, 레너드는 그가 쓰러진 순간 그대로 온 몸이 굳어 쓰러진 그 모습만을 가득 눈에 담았다.
………뭐야, 이게. 처음 든 생각은 딱 그거뿐이었다. 레너드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쓰러진 제임스를 살폈다. 눈을 가만히 감은 채로, 그는 마치 잠든 것 마냥 쓰러져 있었다. 레너드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제임스의 몸 상태를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짐, 장난 치지마.”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를 흔들기 위해 뻗은 팔이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레너드는 제 오른손목을 감싸며 어떻게든 떨림을 진정 시키고는 쓰러진 몸을 흔들었다. 제발. 제발.
또 다시 반복 하지마. 레너드는 간절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고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은 공포감, 두려움, 좌절감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
제발. 제발. 제발.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빌고, 또 빌었을까. 그 때 만큼, 그 때처럼. 그는 계속해서 빌었다. 쓰러져 있던 제임스가 레너드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지도 못한 채로 레너드는 그저 눈을 크게 뜬 채로 그를 바라봤다.
“본즈, 살려줘. 제발 살려줘.” 그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어둠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언젠가, 어디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선생님, 제발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레너드는 거의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다시는 꾸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꿈은 이런 식으로 찾아와 자신을 위협했다. 마치 자신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레너드는 그때마다 절망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한 참이나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다시 잠들면, 눈을 감으면 또 다시 꿈이 찾아올 것만 같아서 그저 두려웠기에.
그는 잠들지 못했다.
메디베이에 팔짱을 끼고 앉은 채로 레너드는 그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한 채, 날밤을 지새웠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 인지 몸은 나른했고, 눈이 뻑뻑했다. 그는 제 몸 상태가 신경 쓰여 검사를 했고, 검사로 확인 된 체온의 수치를 보며 손바닥으로 제 이마를 문질렀다. 빌어먹을. 악몽을 꾸는 것도 나름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곧 있으면 시프트 교대 타임이라는 것 정도였다. 몸 상태를 직접 수치로 확인하고, 확실히 알게 되니 한 번에 더 피곤이 몰아쳐 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불면 만큼, 대원들이 종종 보이는 증상 중 하나는 열 감기였다. 종종 열 감기 증상을 호소하며 메디베이에 찾아오는 대원들이 몇 명 있었다. 물론 그들은 평소에 건강했고, 정기검진에서도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요소가 없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정말 원인불명이었다. 레너드는 이 증상이 오래 된 우주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발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감지하지 못하는 피로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꾹 눌러도, 어차피 뜨거운 손으로 뜨거운 이마를 만지는 꼴이라 딱히 바뀌는 것은 없었다. 두통은 없지만, 몸은 나른했다. 당장에 잠이라도 자고 싶은 기분인데. “치프.” 누군가 어깨를 조심히 툭툭 두드렸다. 맥코이는 대답도 없기 고개를 획 돌렸고, 순간 찾아 온 어지러룸에 이마를 꾹 누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으세요?”
“어어. 조금 열이 있네. 그거 빼면, 뭐……괜찮은 편이지.”
“음. 조금 일찍 들어가셔서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말해오는 의료부 대원의 표정에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까지 몸이 안 좋아도 말하거나 힘든 내색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나 싶었다. 약간 그랬던 것도 같고. 생각이 그렇게 미치자, 그녀가 걱정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너드는 살짝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그의 행동에도 그녀의 표정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사실 빈 말이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에서 괜찮다가 나오지 않았다.
“……소위, 자네 말이 맞는 것 같네. 다음 근무자 오면 이거 보여주고, 그대로 이어서 진행하라고 해줘. 만약에 긴급한 일 있으면 바로 콜하라고 하고.”
“네, 그럴게요. 걱정 마세요.”
그 말에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안 해. 다들 잘 하잖아.” 라는 말을 하고는 그는 메디베이를 나섰다. 메디베이를 나서고, 걸음을 떼자마자 순식간에 어지러움이 더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끄응.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미감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복도를 지나가던 대원들이 인사하면 그저 다른 손바닥을 보여주며 인사를 대신했다. 얼른 돌아가서 쉬어야지. 그는 최대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마 누군가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걸음이 멈추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본즈?”
이 함선에서 레너드를 ‘본즈’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딱 한 사람뿐이다. 그런 꿈을 꿨는데, 바로 이렇게 보고 싶지는 않은데.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깊게 한 숨을 내뱉었고, 그저 제 머리를 손으로 꾸욱 눌렀다. “……너 괜찮아?” 어느 새 옆으로 다가온 제임스가 파란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눈을 보고 있으니까, 여기가 진짜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도 좀 들고. 겨우 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는 제임스를 바라봤다.
“그냥 내가 부축해줄까?”
“……됐어. 내가 무슨 중환자인 줄 알고. 그렇게 까지는 필요 없어. 괜찮아. 그냥 가면 돼.”
레너드는 지금 자신의 목소리가, 자기가 듣기에도 진심으로 신경질적이 다고 생각했다. 제임스도 그를 알아차렸는지 잠시 침묵했다. 입을 다문 채로 레너드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내가 방까지 데려다 줄게.” 라고 말하면서 레너드의 팔을 잡고 제 쪽으로 당겼다.
“……짐, 분명 나는 됐다고 했잖아.”
“그렇게 가다 언제 도착하려고? 빨리 가서 쉬는 게 좋을 텐데, 그냥 내가 데려다 줄게. 문 앞까지만.”
“괜찮아. 됐어.”
“문 앞까지만. 본즈.”
레너드의 말에도 제임스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레너드는 제임스에게 몸을 맡기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되면, 더 뭐라고 해도 통하지 않을 것 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는 레너드를 부축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과묵한 편이었던가. 레너드는 자신의 기억 중에 제임스와 가장 오래 전 기억부터 천천히 떠올렸지만, 과묵한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고뭉치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지. 그는 수다스러웠고, 관심을 좋아했고, 오만하기까지 했었다. 그래, 분명 예전의 제임스라면, 짐이라면 그랬지. 아마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 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멍하니 넋을 너무 빼놓고 있었는지 쿼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문 앞까지만 이라고 말했던 제임스는 했던 말과는 달리 본즈를 쿼터의 베드까지 데려다 주고는 앉게 했다. 여전히 나가지 않고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제임스의 모습에 레너드가 한 쪽 눈썹을 올린 채로 “……아까 문 앞까지라며?” 아까 전에 제임스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물었다. “……너 자는 거 보고 나갈게.” 팔짱을 낀 채로 살짝 굳힌 표정으로 말하는 제임스의 모습이 다소 어색했다.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다른 건지. 다소 심각한 표정을 한 채로 저를 쳐다보는 모습에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짐. 그렇게 심각하게 볼 정도로 나 문제 있지 않아.”
“그래.”
“표정 좀 풀지 그래. 그리고 나 잘 테니까, 나가.”
“너 자는 거 보고 나간다니까, 본즈.”
“그렇게 누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퍽이나 잠을 자겠다.”
레너드의 말에 제임스의 어깨가 조금 움찔 거린 것 같았지만, 그는 물러서진 않았다. 여전히 굳은 표정이 레너드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살짝 앞으로 몸을 숙이며 자신의 머리를 꾹 눌렀다. 하여튼 고집은 여전해. 깊게 한 숨을 내뱉은 그는 살짝 눈동자만 굴려 여전히 제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제임스를 올려봤다. “알았어, 알았어. 누우면 될 거 아냐, 누우면.” 입고 있던 블루셔츠를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베드에 누웠다.
바로 잠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었다. 레너드는 얼른 잠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임스에게 몸을 돌려 누운 채였다. 눈을 감고 있으니 자꾸만 꿈이 떠올랐다. 죽은 제임스. 죽어버린 제임스. 살려 달라고 말하던 제임스. 살려달라고 외치던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 자신이 제임스를 살린 건 잘한 행동이었을까. 지금 와서 그 때를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상황이 우연히 들어맞았다. 마치 눈앞의 그를 살리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후우우.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낸 소리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이불을 여전히 머리끝까지 덮은 채 레너드는 소리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베드에 제임스가 앉았다. 다시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본즈?” 하고 작게 이름을 불렀고, 레너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너드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잠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제임스는 한 번 더 길게 숨을 내뱉더니 말을 중얼거렸다.
“……네가 가끔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제임스는 한 참이나 베드에 앉아 있었다. 레너드는 이제라도 일어나서 녀석과 대화를 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했고, 곧 이불을 바로 제임스 쪽으로 던지며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이불의 공격을 받은 제임스는 자신의 얼굴에 날아온 이불을 손으로 끌어 내리며 일어난 레너드의 얼굴을 봤다.
“……누가 보면 죽을병에 걸린 줄 알겠다, 이놈아.”
“……그런 이야기 아닌 거 알면서, 또 은근히 피해간다. 만약에 네가 큰 부상을 입거나 할 경우 난 어떻게 못 해. 너는 날 살려줬지만, 나는 널 못 살려. 본즈.”
레너드의 시선이 제임스를 향했다가 곧 흩어졌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운이 좋았던 거야. 너를 살릴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던 거라고.”
레너드는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말했던 적이 없었을 것 이다. 누구에게도. 그래, 누구에게도.
“나는 의사지. 신 같은 게 아니야. 너를 살리지 못했었을 수도 있어.”
“그걸 기억해, 짐. 그러니까 내가 만능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마. 나는 만능이 아냐.” 레너드는 얼굴을 감싼 채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항상 최악을 먼저 생각한다. 그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최악 중의 최악.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안에는 대원들의 죽음도 들어 있었다. 가장 친했던 이의 죽음 또한. 그는 의사이기에, 의사로써, 수많은 죽음들을 봐 왔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은 죽음에 익숙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본즈. 나 좀 봐.”
“됐어, 나가.”
“나 좀 봐봐.”
레너드는 결국 제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떼고, 살짝 고개만 들어 제임스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푸른 눈만이 분명하게 들어왔다. “난 여기 있어.” 제임스는 레너드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그렇게 말했고, 레너드는 어째서인지 그 말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자신을 찾아왔던 그 악몽들. 그 모든 것들이……
멍하니 있던 정신을 깨운 건 제임스의 입술의 제 입술에 닿았을 때였다. 어. 어라? 하고 방금까지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하고 있던 모든 생각들이 단 하나의 단어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제임스가 레너드의 뺨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정말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추고 떨어진 그는 계속해서 레너드의 뺨을 문질렀다. 난 여기 있어. 제임스가 또 한 번 입모양을 그렇게 벙긋거렸다. 레너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보다도, 몸이 먼저였다. 제임스를 끌어안고 그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제임스의 손이 레너드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그 등을 토닥였다.
“잘 자, 본즈. 네 악몽은 오늘 내가 가져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