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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4

* 슴스님과 트위터에서 나누었던 썰 기반으로 짧게 단문









머리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는 것 보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 먼저였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직업정신으로 부상자를 물색하고, 그들을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며 치료를 했다. 넋이 나간 것 마냥 주저앉아 있는 의료 장교의 등을 쳐주며 일으켰다. 몇 명이 레너드를 따라 바삐 움직였다. 상황이 상황인 지라 챙긴 도구들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이러다가 부족하겠어.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했다. 주변에서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끌어 모았다. 온 몸으로 하이포 용 앰플이 담긴 가방을 지켜낸 덕인지 앰플은 무사했고, 일부 약들도 무사했다. 트라이코더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상처만 진료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이 꼴이 난 건지 몰라. 모르겠어. 레너드는 방금, 불과 몇 십분 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금 떠올렸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탐사를 위해 내려온 셔틀이 공격당했고, 그대로 추락했다. 자신들을 공격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보안장교 한 명의 커뮤니케이터만이 멀쩡해서 겨우 엔터프라이즈호에 연락을 취했다. 사실 탐사를 굳이 올 필요가 없었지만 지원했다. 이곳의 토착식물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온다고 했어, 괜히.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후회해 봤자 어떻게 하겠는가. 일은 벌어졌고, 지금 레너드 맥코이에게 있어 1순위는 환자의 보호와 치료였다. 빔업이 될 때 까지 최대한 많은 크루들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치료해야했다. 그러면 대기 중인 메디컬팀이 인계받아 좀 더 정확한 치료를 해줄 수 있겠지. 채플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아마 여기서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라면, 채플이라면 충분히 모든 것을 인계받고 행동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부터 빔업 된다고 합니다!” 라고 누군가 외쳤고, 레너드는 알겠다고 소리쳤다. 몇 명씩 무리 지어 빔업 됐다. 레너드는 자신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겠다고 했기 때문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간 등골이 서늘한 감각이었다. 레너드가 몸을 돌려서는, 제 등 뒤의 크루를 보호했다. 공격을 한 게 무엇인지 여전히 모른다. 온 몸이 긴장했다. 레너드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둬야만 했다. 자신도 크루도 여기서 죽는 것. 그것이 가장 최악. 어디서 날아 온 공격인지도 몰랐다. 어느 방향인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레너드는 그저 순간적으로 복부 부근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빛 무리가 그들을 감쌌다.


도착하자마자 레너드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뒤에 있던 크루가 그를 따라 주저앉았다. “닥터!”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고, 스콧이 달려왔다. “부축하는 것 좀 도와줘! 넌 빨리 닥터가 부상 입었다고, 메디베이에 전해!” 스콧이 누군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레너드는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섰다. 아픔에 고통스러울 텐데 앓는 비명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문 채로 그저 겨우 숨만 내뱉었다. 메디베이로 이동하는 내내 레너드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숨소리만 얇고, 짧게 이어졌다. 그들이 메디베이에 도착해 레너드의 몸을 눕게 해준 것과 동시에 제임스가 도착했다. 브릿지에서부터 헐레벌떡 뛰어온 것인지 그는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베드에 누워 있는 레너드만 바라보았다. 제임스가 숨을 내뱉었다. 레너드의 시선 끝이 제임스에게로 닿았다.


“상처부위가 생각보다 깊어요! 상처 말고도 골절도………” 의료 장교 한 명이 레너드의 몸 상태를 살피며 외쳤다.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제임스가 한 발을 내딛었지만, 다음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함장님. 지금부터 긴급 수술에 들어 갈 거예요.” 그 말에 제임스는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여전히 그의 시선은 레너드에게 가 있었고, 말을 건넨 채플이 제임스의 팔을 붙잡았다.


“함장님.”

“……어. 어. 알았어, 그래.”


제임스가 겨우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플의 시선이 잠시 제임스를 향해 있다 몸을 돌렸다. 1분 1초가 흐르는 시간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브릿지로 돌아가야 했는데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돌이 된 것 마냥 그저 가만히 메디베이 한 쪽 구석에 서 있었다. 스콧과 몇 명이 그런 제임스를 걱정스레 바라봤고, 그는 잠시 말없이 구석에 서 있다 결국 몸을 돌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의사는 다치면 안 돼. 레너드의 말버릇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레너드가 다쳤고, 자신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쿵. 그가 이마를 벽에 큰 소리가 나도록 박았다. 그 소리에 놀란 대원들이 다시 그를 돌아봤지만, 그는 몸을 돌리지 않고 여전히 벽에 머리를 기댄 채로 길게 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건 무력감 같은 걸까? 차라리 같이 나갈 걸. 같이 내려갈 걸.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충분히 위험했다. 충분히, 좀 더 생각하고 많은 수를 예상했었어야 했다.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할 걸. 멍청이. 멍청이 같기는. 멍청이 같다. 멍청한 제임스 커크. 눈앞이 핑 돌았다. 그가 숨을 삼켰다.


제임스를 끌어올린 것은 “끝났어요.” 라고 말한 목소리였다. 벽에 처박고 있던 고개가 일어났다. 베드로 옮겨진 레너드는 잠들어 있었다. “생각 보다 여기저기 긁히고 다친 곳이 많아요. 그런 몸으로 다른 사람들을 우선시 했다는 게, 생각할수록 대단하네요.” 라는 말에 제임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레너드는 항상 그랬다. 그래왔다.



잠이 든 레너드의 베드 앞에 앉은 채로 제임스는 온 시간을 보냈다. 내내 앉아서 아무런 말도 없이 레너드를 보고 있는 모습이 걱정 됐는지 결국 채플은 제임스에게 상태가 괜찮은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알려줬다. 만약 안좋은 상태가 된다면 주저 없이 메디컬 팀을 부르라고도 조언을 잊지 않았고, 제임스는 겨우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채플은 뭔가 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새였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제임스는 채플이, 그리고 모든 메디컬 대원이 나가 최소한의 인원이 남을 때 까지도 레너드의 옆을 지켰다. 새벽까지도 레너드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행히도 위험한 상태로 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제임스의 머리를 헤집으며 돌아다녔다. 레너드는 항상 괜찮다고 했다. 항상. 언제나. 정말 괜찮았던 걸까? 정말로? 그래,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음도 괜찮았을까? 그가 말했던 것처럼?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상대는 잠들어 있었다. 언제 눈을 뜰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은 네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 하지만 비교도 안 되겠지. …………너에 비하면. 물어볼 사람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다. 제임스는 조금 울고 싶어졌고,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메디베이는 조용했고, 고요 했으며, 제임스는 홀로 숨을 죽이며 울다, 울음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