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능력자물.............인데 아직 제대로 진행도 안한... 음...네..... 다음 편은 오억만년 뒤쯤에.. 파이널 프론티어보다 늦어집니다.. 어쩌면 파프 완결내고 쓸 수도 ...있겠지요.. .. 그냥 자꾸 너무 쓰고 싶은 장면이 아른거려서 일단 먼저 썼습니다 흑흑 












인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언제, 어디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레너드 맥코이는 기관에서 제일가는 현장 요원이었다. 수년 간 현장에서 굴렀고, 현장에 나와 보지도 않고 단순히 보고서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자들에게도 시원하게 한 방을 날리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일을 하는 자들은 매번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말이 험하고, 사람 성격이 안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라고. 세상에서 제일 정이 넘치는 사람일 거라고. 아마 이 기관에서 제일 정이 넘치는 사람은 그일 것 이라고. 


결혼 그리고 이혼. 레너드 맥코이는 소위 말하는 돌아온 싱글남이었지만 요즘 세상에 돌아온 싱글남이 레너드 혼자뿐인 것은 아니었으니 그 다지 크게 문제 삼을 만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의사였다. 둘 사이에는 딸도 있었다. 둘은 합의 이혼을 했다. 나쁘게 헤어진 것도, 끝난 것도 아니었으니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레너드는 ‘파멜라’가 좀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 좀 더 가정에 신경을 써줄 수 있고,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 만한 사람. 파멜라는 좋은 사람이었다. 레너드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현장과의 싸움이었다. 별 다를 것이 없는 하루였다. 폭탄물을 신고 받고 나간 현장, 범인으로 추측 되는 사람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인질이 있었다. 그는 건물 안에 있었고, 그 건물에는 여러 명의 사람이 있었다. 범인을 자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협상을 해야만 했다. 기관에서 나온 협상 전문가는 난색을 표했다. 원하는 것도 없고,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우리 쪽에서만 계속 일방적으로 말을 걸고 있을 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문득 레너드가 고개를 들었다. 건물의 안의 범인은 총을 대충 잡은 채로 계속 왔다, 갔다 걷는 것만을 반복했다. 뭔가 이상했다. 뭔가가. 원하는 것도 없고, 딱히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범인은 총 조차도 제대로 쥐고 있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고 있었다. 가끔 범인이 가게 안의 손님들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레너드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마냥 건물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뛰었다. 뛴 게 맞았다. 몇 명이 레너드를 외치며 그를 말리려 했지만, 그는 그들을 뿌리치고 뛰었다. 뭔가 이상하잖아. 저 총, 진짜 총이 맞긴 한가. 저 범인은 진짜 폭탄을 설치하긴 했나? 레너드가 건물 가까이 다가갈수록, 범인은 고성을 질렀다. 지르는 소리가 다 들렸다. 범인은 다급하게 문 근처로 와 제 몸으로 문을 막으려 했고, 총은 여전히 사용하지 않았다. 범인이 문으로 뛰어오는 것 보다 빠르게 뛰어 온 레너드가 온 몸으로 문을 박살 낸 것이 먼저였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픔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레너드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범인은 레너드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건물 안 쪽으로 도망쳤다. 뛰어가는 등을 보며 레너드도 빠르게 뛰었다. 계단을 타고, 타고 내려갔다. 거친 숨소리를 토했다. 


으아아아악! 뛰어 내려가던 범인이 갑자기 소리를 내질렀다.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뭐야. 뭔데. 굉음과 함께 레너드의 기억은 끊겼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얀 천장이었다. 귓가에는 기계음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베드의 옆에서 차트를 확인하고 있던 너스가 레너드가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 하고는 버튼을 눌렀다. “지금 깨어나셨어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다.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레너드는 최대한 자신의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젠장. 살아 있는 것부터가 신기하네. 그저 그런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겨우 눈만 깜빡일 수 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다만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눈을 깜빡이는 걸 대답으로 대신했다. 담당의는 기적이라고만 표현했다. 이건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알려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좀 더 상태가 좋아지신 후에 하죠. 말하는 담당의의 표정은 대체 해줄 말이 무엇인지 좀처럼 예상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다만, 레너드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자꾸만 시야에 보이는 무언가 였다. 사람을 쳐다 볼 때마다 무언가 보였다. 레너드는 그게 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어서,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수 없었다. 그냥 사람에게서 보이는 것 이었다. 사람마다 달랐다. 


일주일쯤이 지나니 베드를 일으켜 세워 앉아 있을 만 했다. 말도 어느 정도 나올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몸에 화상이 심하다고 했다. 그나마 본능적으로 머리부터 감싸 보호하려고 한 덕인지 얼굴이나 머리는 그다지 심각하진 않다고 했다. 한창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와중에 병실 문이 열리고 파이크가 들어왔다. 그는 담당의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곧 담당의가 병실을 나가고 파이크가 베드 근처 의자에 앉았다. 


“괜찮냐고 물어볼 수도 없겠어.”

“……뭐. 그래도 살아 있음 됐죠. 복귀는 못하겠지만.”

“자네가 혼수상태일 동안 파멜라가 왔었었다네.”


그 말에 레너드는 잠시 파이크를 바라봤다. 그는 레너드에게 있어서는 은인이자 직속상관이었다. 엄격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랫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사람. 레너드는 겨우 손을 움직였다. 자꾸만 시야가 방해가 됐다.


“……국장님. 괜히 다른 이야기 하지 맙시다. 나한테 무슨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잖아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거랑 관련 있는 겁니까?”


파이크는 잠시 말없이 레너드를 바라보기만 했다. 한 참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길게 한 숨을 내뱉었다. 


“……가끔 있다고 하더군.”

“후천적으로 능력자 되는 거요?”

“그래.”


레너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기억을 다시 더듬어도, 그 때의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전 그거부터가 기억이 안 납니다.”

“……자네가 쫓았던 남자는……말 그대로 터졌네. 그리고 그 폭발에 자네가 휘말렸어. 놀랍게도. 건물에는 어떠한 피해도 없었고.”

“………혹시 제가 머리를 다쳤습니까? 제가 말을 이해를 잘…….”

“레너드. 자네야. 자네가 피해를 줄였어.”


파이크의 말에 레너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날의 상황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천천히 기억이 날 걸세. 그 날, 분명 모두가 굉음을 들었지만 건물은 멀쩡했네.” 그 말에 레너드는 숨을 삼켰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레너드는 괜히 제 손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의 몸에는 보이던 것이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냥 평소와 똑같았다. 


“내가 하나 팀을 신설할 걸세. 회복 하면 자네가 그곳을 맡아.”

“……제가 왜 해야 합니까? 저 말고도 다른 녀석이……”

“우선 자네의 현장 경험을 높이 사기 때문이고. 그 다음엔 내가 만들려는 팀은 ‘이레귤러’들로 구성 된 특수 팀이기 때문이지.”

“………그 팀이 필요 합니까?”

“필요해. 앞으로는 더욱 필요해지겠지. ‘알타미르’가 움직여. 게다가 그 곳의 리더가 상당한 능력자라는 정보를 잡아냈어.”


파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복에 전념하게. 자네는 회복하면 직접 팀원들을 찾으러 가야 하니까.” 그 말에 레너드는 작게 젠장.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에 파이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병실을 나가기 전 다시 몸을 돌려 레너드를 바라봤다. 잔뜩 불만을 가진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파이크는 짧게 말했다.


“……그래도 자네가 살아 있어서 기쁘다네.”

“……제가 없으면 부려 먹을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신 거겠죠.”

“나 참. 말 도 못하겠구만.” 


그렇게 말하면서 파이크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행운을 빌어, 레너드.”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 병실을 나갔다. 





아이오와. 그것도 아주 깊은 시골. 주변은 온통 농장 뿐 이었다. 레너드는 이동을 하면서도 이 길이 맞는 거냐고 스콧에게 몇 번이고 확인을 했다. 스콧은 레너드의 질문이 다섯 번 쯤 되었을 때 “아 좀!” 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레너드는 한적한 시골길을 걸었다. 있는 거라고는 농장. 농장. 농장. 그리고 간혹 보이는 사람들도 다 농장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 레너드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미스터 커크네 댁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지었던 표정을 다시 금 떠올렸다. 그 집에는 왜 가냐는 표정. 뭣 하러 가냐는 표정. 이 사람들 이 마을 사람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가. 집은 아주 깊은 곳에 있었다. 길을 한 참이나 걸어가고, 숲을 하나 지나야 한다고도 했다. 사람들을 피해서 사는 능력자들이라. 정말 흔한 소설 소재잖아.


레너드는 흙길을 지나 숲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조금 특이하다고 해서,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면서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도 있지. 길이 험해, 레너드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조금 헉헉 거렸다. 회복하고 병실을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런 개고생이라니. 그냥 못 들은 걸로 하고 은퇴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순간 눈앞에 파란 불꽃이 튀었다. 헉. 크게 숨을 삼키며 레너드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어느 방향에서 온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 했지만 막상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당신. 누구야?”


소리가 들린 것은 머리 위였다. “이 숲에는 보통 아무도 안 들어오는데.” 금발 머리에 선명한 파란 눈. 안광이 빛났다. 그의 손안에서 푸른 빛 덩어리들이 번쩍거렸다. 사진으로 봤던 거랑 똑같네. 


“……네가 그 제임스 커크냐?”


레너드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사람은 땅에 발을 붙인 채로, 그리고 한 사람은 공중에 떠 있는 채로 서로를 노려봤다. 제임스의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진짜 의심스러운 사람이네. 누구야?”

“별로 공격 할 마음도 없고, 공격 할 생각도 없어.  이래보여도 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환자거든.”


레너드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양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제임스는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로 마치, 침대에 누운 것 마냥 옆으로 누워 머리에 손을 괸 채로 레너드를 바라봤다. 


“이름.”

“……레너드 맥코이.”

“……뭔가 들어 본 적 있는 이름 같긴 하네.”

“……난 분명 전화 했었어.”


잔뜩 경계하는 눈이 레너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난 사람 안 믿어.” 툭 내뱉은 말에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래서 위협하고, 무력을 행사하시겠다? ……너 진짜 애구나?”

“……아직 아무것도 안했거든. 레너드 맥코이.”

“그렇게 치면 나도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레너드의 말에도 제임스는 여전히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한 참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던 제임스가 겨우 땅을 밟고 내려왔다. 손 안의 빛 덩어리들은 사라져 있었다. 


“……좋아. 우리 집에 볼 일이 있는 거면 따라와. 수상한 짓 하지 말고.”

“……이봐. 커크. 난 그 집에는 볼 일 없어. 내가 볼 일 있는 건 당신이라고.”


레너드가 눈을 느릿느릿 깜빡거렸다. 자신의 시야를 방해한다고 생각했었던 그것. 레너드는 그것을 힘의 종류 내지 량 같은 것 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능력에 제한이 없다는 소리인가? ……그러고 보면 아까 공중에 떠있는 것과 동시에 빛 덩어리를 다루었지. 능력 자체가 한 가지만은 아니라는 소린가. 레너드가 제 이마를 손으로 꾹 누르며 잠시 생각했다. 제임스는 레너드의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결국 꽤 기다려도 레너드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그는 툭 말을 내뱉었다.


“뭔데. 용건. 빨리 말해.”

“댁을 데려가려고 왔지. 스카우트하려고.”

“……좋아. 이제 좀 기억났어. ………무슨 기관 이랬었지. 난 안가. 이야기 즐거웠어. 잘 가, 맥코이.”

“……이봐!”

“못 들었으면 다시 말해줘? 난, 안 가.”

“설명 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냐?”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나는 안 가. 애초에 기관에 들어 갈 이유가 없다고.”


제임스가 조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레너드는 그런 제임스를 보며 입술을 벙긋거리다 다물었다. 레너드가 길게 한 숨을 내뱉었다. 


“……왜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는 댁은 왜 날 데려가고 싶어 하는데? 윗사람이 시켜서 그런 거 아냐?”

“그것만은 아니야.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그랬는데………아무튼 지금은 아냐. 생각을 조금 바꿨거든. 필요하다고 생각해. 너도 알다시피 능력자들은 점점 많아져. 불가사의한 사건들도 많이 생기고 있고. 일반 팀들만으로는 가끔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생겨.”


제임스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팔짱을 낀 채로 그는 레너드를 바라보다가 획 몸을 돌렸다. “그래도 안 가.” 그렇게 대답을 하더니 성큼성큼 걸었다. 레너드는 그런 제임스의 뒤를 따랐다. 뒤를 따라오는 레너드의 부름에도 제임스는 멈추지 않았다. 과한 경계. 어딘가 겁에 질린 것 같은 행동. 레너드는 차오른 숨을 고르며 걸음을 멈췄다. 상처 부위들이 당겨왔다. 


“………너. 네 능력이 무섭냐?”


그 한마디에 제임스의 걸음이 멈췄다.


“…………이유는 아마 그 끝을 알 수가 없어서.”


마치 그것은 우주와도 같이. 블랙홀과도 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런 광활하고 넓은. 제임스가 겨우 몸을 돌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뱉는 말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잔뜩 붙어 있었다. 레너드는 제임스를 바라봤다가, 제 손을 바라봤다. 


“나도 그래.”

“………”

“나도 그런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레너드는 자신의 눈을 가리며 길게 한 숨을 내뱉었다. 제임스는 한 동안 말없이 레너드만 바라봤다. 기억을 더듬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렸다.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제임스에게 내밀며 레너드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눈. 제임스는 그 눈을 가만히 마주보다 먼저 시선을 돌렸다. 이 남자는 너머를 보고 있다. 


“……너는 텅 비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마음대로 보지 말아줄래. 처음 당해보는데, 기분 은근히 이상하네.”

“……미안. 아직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잘 몰라.”

“생각 좀 하고 대답 할 테니까. ………일단 돌아가.”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레너드를 바라봤다가 땅으로 시선을 내렸다. 후욱. 길게 숨을 뱉어냈다. 아마 저 녀석은 올 거야. 오게 될 거야. 레너드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건 꿈 일까? 레너드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제임스를 만나고 우선은 근처에 잡아 둔 숙소로 돌아와서 방금 막 침대에 누운 참 이었다. 꿈일까? 꿈이 아닌가? 사실 잘 모르겠다. 레너드는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다. 그건 상대방도 똑같은가? 그래 보이지는 않았는데. 침대에 막 누운 옷차림 그대로였다. 맨발. 바닥은 흙바닥이었지만, 따갑지 않았다. 레너드는 자신이 지금까지 봤던 사람들에게 보였던 빛과 같은 그림자가, 그러니까 능력의 형태가 똑같은 사람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남자와 자신은 똑같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너드는 바닥을 한 참이나 바라봤다. 우선 걸어봐야 할 것 같았다. 이정표도, 길도 없었건만 그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 알았다. 확신에 찬 걸음으로 그는 걷기 시작했다. 


풍경은 아이오와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욱 황량하고, 허무했다. 풀 한포기도 없고, 어떤 건물도 없고, 뚜렷한 길도 없었다. 어린 아이가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레너드의 앞에 앉아 있었다. 금발 머리. 누군지 알 것 같은데. 


그리고 아이의 앞에는 검은 구멍이 있었다. 늪 같기도 하고, 구멍 같기도 하고, 연못 같기도 하고. 블랙홀? 레너드는 잠시 아이의 옆에 서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빤히 구멍의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이것은 제임스의 공허이자, 마음이자, 그가 사용하는 능력의 총량……일 터였다. 한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것. 


이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레너드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한 발을 내딛었다. 곧 새카만 공허와 어둠이 그를 집어 삼켰다. 


안 돼. 오지 마. 어둠이 그를 집어 삼키기 전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아까 오후에 만났던 제임스의 목소리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깊이를 알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바닥도 자신이 밟고 있는 곳이 바닥일까. 레너드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제임스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이 올바른 바닥인지, 아니면 자신이 있는 곳이 올바른 바닥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레너드에게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렇다면 내가 너를 부른 걸까, 아니면 네가 나를 부른 걸까.


그와 자신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