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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베이 안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간간히 메디컬 크루들이 잡담을 나누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배경음악 마냥 깔렸다. 탐사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함선에 생길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 적으로 크루들의 몸에 이상이 생길 일도 없으니 메디베이가 조용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이런 순간을 좋아했다. 일이 없는 건 이상하고, 뭔가 더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이 고요함이 싫지만은 않았기에 좋아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싫지 않다는 게 좋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잖아? 라고 물어보겠지만, 레너드에게는 그 정도였다. 적막감 속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수다소리와 웃음소리에 기계음이 섞여 있었다. 메디베이에서 사용하는 의약품들과 모든 설비들도 체크가 완료되었고, 환자는 없었다. 지상의 병원에서는 별로 겪어본 적 없는 날이 이 우주에서는 종종 있었다. 물론 그 보다 더 위험한, 수배, 수천 배로 위험한 일도 매우 많았지만.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 레너드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지금 순간만큼은 이 적막을, 고요를 잠시 즐기고 싶었기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그는 자연스럽게 제임스의 쿼터로 돌아갔다. 방금 막 먼저 온 모양인지 제임스가 들어 온 레너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커피 마실래?” 그 말에 레너드는 그저 좋지, 커피. 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베드에 걸터앉았다. 간만의 여유였다. 탐사도 별 무리가 없었고, 아픈 사람도 없고. 그러니 자연스레 함교든, 메디베이든 여유가 있었다. 


“설탕 넣지? 얼마 넣더라? 세 번? 네 번?”

“두 번이면 돼.”

“웬일로?”


제임스가 그렇게 말하며 큭큭 거리며 웃었다. “오늘은 그렇게 먹고 싶어져서?” 라는 말에 제임스는 으흠. 하고 잠시 레너드를 돌아봤다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곧 그가 컵을 두 잔 손에 쥔 채로 베드로 다가왔다. 한 잔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고 제임스를 바라보니 그가 커피를 홀짝이며 레너드의 옆에 앉았다. 


“그러는 넌 웬일로 안 달라붙어.”

“와우, 본즈. 내가 달라붙는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건 달라붙는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 애정 표현이라고 해야지.”


제임스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짓궂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미안하다. 애정 표현.” 이라고 정정해주며 레너드는 커피를 홀짝거렸다. “미안하면, 여기에 뽀뽀해줘.” 라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제 볼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레너드는 커피를 홀짝이며 그런 제임스의 볼을 바라보다,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레너드의 입술이 살짝 제임스의 볼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자, 됐냐. 꼬맹아.”

“좋아. 이걸로 조금 봐줄게.”

“조금? 네 녀석이 그 동안 나 고생 시킨 거 생각하면 이거 하나로 많이 봐줘야 하거든?”

“……음. 네. 미안합니다.”


레너드의 말에 즉각 대답하며 제임스는 그를 바라보다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에 따라 웃던 레너드가 제임스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당겼다. “네가 아니라 내가 웃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툭 말을 내뱉으며 꼬집고 있던 볼을 놔주었다. 잡혔던 볼을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제임스는 이번엔 소리 없이 그저 미소 짓더니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도 웃지 말까?”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 아니, 좀 안 웃는 게 내 심장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웃는 거랑 네 심장이랑 무슨 상관인데?”

“넌 너무 잘 생겼어. 근데 거기에 웃으면 더 잘 생겼다고.”


그 말에 제임스는 잠시 레너드를 멀뚱멀뚱 쳐다보다 제법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레너드는 커피를 들이켰다. 빈 컵을 근처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제임스를 바라보다, 그 선명한 파란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또 다시 웃었다. 매번 저 웃음에 약했다. 저게 뭐라고. 뭐긴, 엄청 잘생긴 녀석이지. 그리고 자기가 그 얼굴이 잘 생긴걸 아는 놈이고. 레너드는 그저 입모양만으로 왜, 뭐. 라고 중얼거렸다. 


“그 잘 생긴 사람이 네 거야, 본즈.”

“………허.”


혀를 한 번 차는가 싶더니 레너드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제임스를 바라봤다. 제임스는 빨리 뭐라도 말해달라는 눈으로 레너드를 바라봤다. 


“그래. 빌어먹게 잘 생기고 젊은 함장이 내 거네.”


라고 말하며 레너드는 다시 베드에 엉덩이를 붙이고 걸터앉았다. 레너드가 앉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제임스는 컵을 그에게 넘기고는 다리를 베고 누웠다. 받은 컵을 보니 커피가 조금 남아 있어, 레너드는 한 모금을 마셔봤다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별로네.”

“그야, 본즈는 단 걸 좋아하니까. 이리 줘, 마저 마실 테니까.”

“마실 거면 일어나.”


레너드는 그렇게 말하며 제임스의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조금 간지러웠던 모양인지 몸을 움찔거렸다. 제임스가 몸을 일으키자, 레너드는 그의 몸과 제 팔이 충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팔을 살짝 높이 올려 틈을 만들었다. 일어난 제임스가 팔을 뻗어 컵을 빼앗더니, 곧 커피를 마시는가 싶었다. 레너드의 뺨을 손이 감쌌다. 그대로 입술이 닿음과 동시에 느릿하게 키스가 이어졌다. 키스를 하는 건지, 커피를 받아 마시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숨결과 함께 커피가 뒤섞였다. 잡아먹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키스였다. 레너드는 결국 제임스의 목덜미를 조금 끌어안았다. 진득하게 이어진 키스가 끝나고서 제임스가 슬쩍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건 어때?”

“……몰라.”


대답을 하며 레너드가 조금 시선을 회피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제임스는 조금 붉어진 얼굴을 보며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입술 위로 짧게 한 번 더 입맞춤을 해준 제임스는 다시 레너드의 다리를 베고, 누우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레너드와 시선이 마주했다. 레너드의 손이 천천히 제임스의 얼굴을 쓸어 주다, 머리카락을 쓸고, 눈 근처를 쓸었다. 


“……오늘 메디베이가 엄청 조용했는데 말이지. 그런 일이 별로 없다보니, 조금 이상하면서도 나쁘진 않더라.”

“……함교도 오늘 별 거 없었어. 기술팀도 평소보단 조금 여유 있는 느낌이었고.”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레너드도, 제임스도. 제 얼굴을 만지는 손가락을 가만히 두던 제임스가 손을 뻗어서는 레너드의 손을 잡았다.


“……평온한 것도 나쁘진 않지. 아니, 오히려 평온하고 여유 있는 게 좋아, 요즘은.”


그 말에 레너드는 대답 대신 그저 제임스를 빤히 바라봤다. 왜? 라고 묻는 모양새로.


“그야 너랑 좀 더 오래, 여유롭게 이야기 나누면서 있을 수 있잖아.”

“……나 참. 그러게 좀 전부터 진즉 잘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 말에 제임스가 그저 푸흐. 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레너드의 손목을, 손을 만지던 제임스는 천천히 손가락을 만지더니 손끝에 살짝 입 맞췄다. 


“본즈. 다시 태어난다면 나랑 또 연애할래?”

“허.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너보다 늦게 태어나서 너랑 안 만날 거야.”


상처가 될 수도 있을 법한 소리에도 제임스의 입에서는 너무한다는 소리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이, 푸른 눈이 레너를 빤히 바라보다 손바닥에 살짝 입술을 맞추고 손을 잡았다. 


“그래? 정말로?”

“………몰라. 나 참. 그 얼굴로 그렇게 물어 보지 마, 진짜 반칙이다. 그거.”


레너드는 결국 다른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면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 같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모든 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레너드가 숨을 길게 내뱉었다.


“만약을 가정해서, 만약 신이 나한테 태어날 수 있는 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난 한 25세기 쯤 태어날 거다. 됐냐?”

“그럼, 나는 24세기와 25세기의 사이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바라본 제임스의 눈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젠장, 너 왜 이렇게 다정해?” 툭 말을 뱉어내며 레너드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뜨거운 뺨의 위로 제임스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만큼 네가 좋다 이거지.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기대오는 게 느껴졌다. 레너드는 결국 작게 웃었다. 


“……다시 태어나도 금발에 푸른 눈이면 좋겠네.”

“………왜.”

“네가 날 찾을 때 좀 편하라고?”

“짐. 금발에 푸른 눈은 생각보다 많다고?”

“아니면 한 눈에 딱! 알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거지.”


그런 실없는 소리에 레너드는 또 다시 웃어버렸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요즘 세상은 워낙 좋아져 딱히 우산을 직접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버튼 하나만으로 빗물을 막아주는 배리어를 생성할 수 있었지만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기분이 우중충했다. 벤치에 앉아서 하염없이 비를 퍼붓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구름도 자연적인 건지, 아니면 인공적인건지. 이렇게 봐서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파란 눈 가득 컴컴한 하늘을 눈에 담던 그의 눈 위로 노란 우산이 드리워졌다. 요즘 세상에도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니. 조금 놀랍네. 놀란 눈을 고개를 똑바로 해 앞을 바라보니 이제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 한 명이 허리를 조금 숙인 채로 제게 우산을 쓰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비 맞으면 감기 걸려요.”

“가끔 이렇게 비 맞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인 걸. ……마음 씀씀이가 좋네요. 다들 그냥 지나쳐갔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힘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곤 웃었다. 우산을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


그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빗소리 말고는 두 사람 사이에 더 소리는 오고가지 않았다. 그가 웃었다. 아까처럼 완전히 힘없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왜 인지는 몰라도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이름이 뭐에요? 아. 이럴 땐 내 이름을 먼저 말해야 하는 거지. 나는 제임스 커크요.”

“………레너드 맥코이에요.”


‘제임스’가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생각보다 제법 큰 남자의 키에 레너드는 조금 몸을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순간 우산도 놓치고, 뒤로 넘어질 뻔 했지만 제임스가 잡아준 덕에 넘어지지도, 우산을 놓치지도 않았다. 제임스의 눈은 마치 선명한 바다, 아니 하늘과도 같은 색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그랬다. 이런 우중충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은……그런 눈.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조심해요. 다 젖겠는 걸.”

“……고맙습니다.”

“아니, 나야말로. 고맙다고 해야 할 건 나에요.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왜요?”

“………왜 인지………나랑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아서요.”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레너드는 그저 대답대신 그만 멀거니 바라봤다. 그는 우산을 한 번 더 제대로 쥐어주더니 웃었다. 잘 웃네. 이 사람. 


“잘 가요. 고마워요.”


그가 몸을 먼저 돌렸다. 다시 빗속을 거닐었다. 빗방울이 아까보다는 조금 잦아들었다. 말을 해야 할까?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레너드는 우산을 든 채로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봤다. 그 순간 누가 등을 툭 민 것 같았다. 몸이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몇 발자국을 내딛은 몸이 멈췄다. 퍼뜩 고개를 든 레너드는 제 등 뒤에서 민 사람을 확인해보는 것보다도 걸어가고 있는 제임스를 향해 외쳤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여기를 지나가요!”


걸음을 옮기던 제임스의 발이 멈췄다. 아.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제 비는 더 내리지 않았다. 하늘은 조금 어두웠지만, 비는 그쳤다. 방금 막 본인이 외쳐놓고는 무슨 짓을 한 건지 싶어졌다. 지금 무슨 정신으로 뭔 말을 한 거람.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말 마냥 뱉은 걸지도 모르는데.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당장에라도 몸을 돌려, 뛰어가고 싶었다. 어디 몸을 숨길만한 곳이 없을까 고민했다. 제임스가 완전히 몸을 돌렸다. 일주일에 한 번. 제임스의 입모양이 그렇게 벙긋거렸다. 


그가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흔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이 만남의 시작이었다. 














아무말님과 나눴던 아무말멘션(?)...에서 비롯된 연성입니다..

아무말님 : 제가 먼저 23세기에 가 있을게요

저 : 그럼 전 22세기와 23세기 사이에서 기다릴게요 

위의 말 같은 멘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억에서 의존해서 맞는지는 모르겠고..글에서는 적당히 변형했습니다... 아악 아무말님은 이런 연성을 바라신 게 아니실텐데 제가... 뭘 드린거람...하하..나참...하하.. 제 글이 너모 어이가 없네요 하하..나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