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의 끝에는 항상 그 남자가 머물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남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끝에 있었다. 이렇게 바라보면, 들키는 게 아닐까. 아니 아마 그라면 이미 이 시선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토마스 스티븐슨이 보고 있는 남자는 다이무스 홀든 이었으니까. 그는 홀든가의 장남이자, 헬리오스의 에이스였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그에 대해서 토마스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이러했다. 몇 번 전장에서 얼굴을 마주치고, 싸움을 말리면서 마주치고, 그런 식의 마주침과 인사만 몇 번 나누어 보았을 뿐. 그게 전부였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자신의 시선 끝에 있었다.

 

사석에 만나던 일이 없던 남자가, 술집에 바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토마스는 저도 모르게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지쳐보이는 그 모습에 토마스는 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다가 결국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스티븐슨." 먼저 부른 것은 다이무스의 목소리였다.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던 토마스가 어정쩡한 자세로 돌아보았다. 똑같은 눈이었다. 토마스는 그저 고개를 꾸벅 거리고는 가볍게 인사했다. 다이무스는 제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옆에 앉겠나." 뜻밖의 제안에 토마스는 잠시 눈을 굴리면서 고민했다. "바쁘다면 괜찮다." 그가 다시 말을 덧붙였고, 토마스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제 이름을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나."

“……그냥,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토마스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술로 제 목을 축였을 뿐 이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말 실수 하면 어쩌지 하는 그런 기분. 마치 시험대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다이무스는 그런 토마스를 바라보다 곧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토마스도, 다이무스도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홀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어? 어? 아뇨, 어, 우리 서로 적대 세력인 건 맞지만 그래도 다이무스씨는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러니까. 적대세력인 거랑 사람을 인정하는 거랑은 별개라는 이야기에요.” 토마스가 제 볼을 긁적거리며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 토마스의 태도에 다이무스가 살짝 웃는 것도 같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스티븐슨." 다이무스의 말에 토마스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기분 나쁘게 한 거 아닌 거 같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다시 술로 목을 축였다. 술잔이 비자, 또 술로 채워졌다. 자꾸만 술을 찾았다. 이러다가 취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바짝 긴장한 몸은 멈출 줄을 몰랐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면 대답 해줄 거예요?"

“…나를 볼 때마다 매번 긴장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다이무스는 그렇게 덧붙이며 토마스를 바라봤다. 토마스는 다시 또 술잔을 집었고, 곧 제 입가로 가져갔다. 아마 그의 손이 술잔과 손목을 잡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술을 들이켰을 터였다. 당황한 시선이 곧 다이무스에게로 향했다. 다이무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술잔을 바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이미 취기가 많이 올랐다, 스티븐슨."

"으, 아뇨, 저기. 괜찮아요. 막 취해서 헛소리 할 정도는 아니고. 이 정도는..."

“마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뇨, 저기, 어, 손목 좀 놔주세요. 다이무스씨.” 토마스가 덧붙였고, 곧 다이무스는 토마스의 손목을 놔주고는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의미였다. “저 좀 취한 거 같이 보여요?” 토마스가 대뜸 물었다. “조금.” 이라고 다이무스가 바로 대답했고, 토마스는 곧 제 얼굴을 주무르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지금 하는 소리, 술 취해서 헛소리 하는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푹 숙인 채로 중얼거리는 토마스의 말에 다이무스의 시선이 토마스를 향했다. 토마스가 확인 하려는 듯, 고개를 겨우 들고는 잔뜩 벌게진 얼굴로 다이무스를 바라보자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있죠. 진짜 이상하게 들릴 거 같지만, 그냥 술 취했다고 생각 하고 헛소리라고 생각해주세요. 좋아해요. 그러니까, 다이무스씨를 좋아한다고요. 자꾸 시선이 가요. 막 보고 있으면 긴장이 되고, 말실수 할까봐 겁나고. 회사 측이랑 싸움이 있거나 무슨 모임이 있으면 항상 다이무스씨를 찾아요. 내 시선은 항상 당신한테 머물러요."

 

토마스가 쏟아내듯 숨도 쉬지 않고 말을 토해내며 그대로 테이블 위로 무너져 내렸다. 얼굴을 푹 묻은 채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그저 바람 빠진 것 같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죄송해요. 헛소리 아니 예요. 진심 이예요." 토마스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신을 혐오하거나 싫어하게 될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대답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왜 갑자기 말해야 한다고 생각 한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스티븐슨."

“……죄송해요."

“무엇이."

“……좋아해서요. 내가 다이무스씨를 좋아하는 거요."

“그게 왜 죄송할 일인지 모르겠군. 일어날 수 있겠나. 데려다주지."

 

다이무스가 토마스의 팔을 붙잡고 일으키려 했다. 토마스는 그대로 버티려고 했지만, 술에 취한 몸은 그래주질 못했다. 왜 그렇게 술을 마셨지. 토마스는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것 이었다. 이미 울상이 된 얼굴을 그에게 보이고 싶진 않았다. 필사적으로 다른 팔로 제 얼굴을 가린 채로 토마스는 울먹거렸다.

 

“……좋아해요."

“안다."

“……진심 이예요."

“…그것 또한 안다."

 

다이무스는 토마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그 날 토마스는 다이무스의 앞에서 펑펑 울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