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정리해도 정리되지 않는 속과 허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는 것 이었다. 소년이 허무를 찾은 것이 아닌 허무가 소년을 찾아왔고, 반겼으며, 증식하고 지배했다. 소년은 매번 허무를 무서워했지만, 그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었다. 벗어날 수 없는 것과도 같았다. 아니 스스로를 묶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끊어지지 않았고, 끊을 수 없었으며 그것은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무너질 때를 기다리는 것 마냥.
무엇하나 욕심내지 않은 삶이었다. 아니, 그렇게 되어버린 삶이었다. 성장하면서 욕심이란 것은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스스로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하나 가져본 적이 없는 삶이었고, 완벽을 요하는 삶이었다. 아마 죽은 형과 같이 살았던 것 인지도 모른다.
형은 기대를 받는 인물이었고, 누구에게나 다정했으며,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깊은 배려와 마음은 상처 받으면 푹푹 패였고, 회복하지 못했다. 남자는 태생적으로 제 상처를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삶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자는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동생과 달리 풍족하고 사랑받는 삶이었다. 모두의 관심을 받고, 애정을 받았으며, 완벽한 아들로 자라났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동생에게 화를 냈고, 동생은 그 화를 받아주는 듯 했지만 받아주진 못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너무나도 큰 문제였다.
형은 동생의 그런 허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깊은 열등감고 고독조차도. 동생은 형이 받는 사랑과 관심에 시기했던 적이 있었으나 그것들을 전부 내려놓고 말았다. 너무나도 쉽게. 어렵지 않게. 그리고 속에 자리 잡은 것은 커다란 구멍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동생은 그 구멍에 모든 것을 집어넣었다. 욕심, 이기심, 자만, 시기, 질투, 분노, 열등감 그 모든 것들을. 부모에게 상처받은 일들, 사촌들에게 상처받은 일들. 남아 있는 것 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형은 자살했다. 유서는 없었다. 그의 방에서 나온 것은 많은 약병들과 처방전들. 그리고 평범한 일기. 동생은 형의 죽음을 말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그를 붙잡아줄 것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형의 망령은 동생을 따라다녔다. 가족이 모두 있는 식탁에 앉으면 온통 속이 메스꺼웠다. 하지만 이를 부모에게 티내지는 않는다. 그것이 한 가지 규칙이었다. 앉아 있는 맞은 편 자리에는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가장 상석에는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 형이 죽은 뒤로, 그 자리가 채워지는 일은 없었다. 동생의 눈에는 매번 죽은 형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목이 괴상하게 꺾여있는 형이.
……그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이었다.
동생이 버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혐오였다.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것이 항상 머리를 헤집어 놨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것도 티내지 않으려 한다. 자신은 항상 괜찮아야 했다.
미국에 건너오고 나서 스토커에 시달렸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집 앞 종이 박스에 넣어둔다던지, 멀리서 자신을 몰래 촬영한 사진들을 우편함에 넣어놓는다던지. 회사로 꽃다발과 제 사진들을 보낸다던지. 최악의 최악이었다.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강정이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를 시험받는 것처럼.
사랑 받아본 적도 없고, 사랑을 해본 적도 없구나. 그 스토커는 피가 터지도록 맞으면서도 웃으면서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불쌍하긴.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그렇게 중얼 거렸다. 주변에서 만류하지 않았으면 상대가 죽을 정도로 팼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결국 회사에서는 며칠 동안 업무 중지 처리 징계를 먹고, 하릴 없이 휴게실 의자에서 앉아 있는 나날이었다. 문득 죽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죽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얼굴을 감싸 쥐었을 뿐 이었다. 요령 없이 팬 손은 온통 상처 투성이였다. 저는 살아도 되는 걸까요. 홀로 살아남은 동생은 아니, 단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단영은 스위프트에게 문득 그런 질문을 받았었던 적이 있었다. “너는 하고 싶은 게 뭐냐.” 질문을 하는 스위프트의 목소리는 매우 단조로웠고, 평소보다도 더 낮았다.
“잘 모르겠어요.”
단영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에 스위프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질문을 했을 때와 같은 표정을 하고서는 “그럼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 라고 말하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가버렸을 뿐 이었다. 그 말을 듣고 일주일을 생각해봤으나,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친척 중 한 명이 한국으로 돌아오라며 연락을 하며 성을 냈다. 돌아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친척 중 한 명이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번의 대답도 똑같았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런 말들이 이어졌다.
밤에는 잠들지 못했다. 죽었을 때의 기억이 무심코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불을 끄지 못했다. 켜둔 채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그 다음날을 보내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아야만 했다.
남에게 속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까칠하거나. 딱딱하더라도 좋은 사람들 이었다. 충분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다.
목이 졸리는 꿈을 꿨다. 누가 조르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는 명확히 볼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애매한, 미적지근함. 스스로에 대한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벗어날 수 없었다. 항상 묶여있고 묶여 있을 일 이었다.
멈췄던 유서 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것은 다시 죽음으로 몰린 자의 발버둥이나 다름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때만큼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었다. 자신은 최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괜찮아야만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에 집중했다. 일을 하고, 일을 하면서, 다시 돌아와서 어제 썼던 유서를 읽고, 다시 수정하고, 읽고. 별 다른 취미 생활은 없었다. 음식을 잔뜩 만들어 놓는 일은 많았지만. 결국 먹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뭔가 식사 시간이라는 것이 뚜렷하지 않았고, 무너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초콜릿을 하나 입에 넣었다. 자신은 최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아니 차곡차곡 쌓여서 터져버렸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지도. 아니 애써 부정했을지도.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것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는 느낌이었다. 욕심도, 고집도, 그 모든 것들도. 잠을 자면 계속해서 악몽의 연속이었다. 까만 구멍의 앞에서 서서 그 구멍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꿈이었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꿈에서 깨면 남은 것은 또 다시 혐오와 허무였다.
하지만 또 다시 그를 보면 혐오와 허무를 부수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진 못했다. 다시 그동안 썼던 유서를 돌아봤다. 그런 일이 있으면서 유서를 쓰는 일을 멈추었다. 더는 쓸 수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아무도 없는 방은 자신 혼자 있었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잠들면 또 같은 꿈을 꾸거나 혹은 조금은 다른 꿈을 꿀 것이 뻔했다.
애써 부정했다. 모든 것을 포기했고, 이해할 수 없었으며, 버리고 싶었기에. 부정과 회피 그리고 괜찮다는 이야기는 단영이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것 이었다. 절대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는 것 이었다. 꿈속의 자신은 자신의 뒤에서 항상 괴롭혔다. 너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손가락질 하며 뒤따랐다. 자신에게는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무언가에 대한 욕심이나 미련도 가지면 되지 않았다.
남자는 기대를 가지게 만들었다. 아니 멋대로 기대를 품게 된 것은 자신 쪽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마음대로 울 수도 없는 것인 단영의 현실이었으며, 사실이었다. 쌓인 스트레스나 슬픔이나 허무를 어떻게 버려야 하고, 표출해야 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자신은 최악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참고 참아냈던 것은 터지고야 말아서 꿈속에서의 단영은 폭발했다. 이미 많이 한계까지 몰려있었던 것을 스스로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터졌고 단영은 꿈에서 깨자마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뭘 어쩌라는 거야.
기가 다 빠질 정도로 울고 축 늘어진 몸을 그저 이불로 말았을 뿐 이었다. 그래 자신은 그를 좋아했다. 좋아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몰라도 확실하게 좋아하고 있었고, 모르는 척, 모르고 있던 사이에 이미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이대로 계속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또 지치게 만들 것 인가. 아니면 우선 속에 있는 걸 그에게 털어놓을 것 인가. 하지만 거부 받을까봐 두려워졌다. 지금까지 수 없이 거부를 해온 자는 그런 것들이 두려웠다. 사실은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가장 오래 가지고 있는 혐오와 허무조차도 단영은 무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욕심을 부렸다. 부려보았다. 그 만큼 좋아하고 있었다. 꿈속의 자신이 또 다시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손가락질 했다. 잠들면 금방이라도 심장이 멈추어 버릴 것만 같았다. ‘제발 그만 해.’ 쥐어짜듯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간절함을 닮아 있었다. ‘나를 좀 내버려 둬.’ 그것은 어쩌면 최초의 시도였다.
그리고 지금.
오랜 꿈 이었다. 옆에는 어느 새 연인이 된 남자, 아니 에이든이 누워 있었다. 자고 있는 걸까. 잠들어 있을까. 단영은 잠시 눈을 뜬 채로 에이든을 바라보다가 천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신이 몽롱했다. 몸을 일으키자 몸과 정신이 순식간에 휘청 이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아. 단영은 에이든의 몸에 제 머리를 푹 기댔다. 몇 번이고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이름은 자신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이름이었다. 힘, 어쩌면 의지. 어쩌면 의욕. 어쩌면 욕심, 집착. 자신도 결국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 무언가를 잃으면 찾아오게 될 허무와 슬픔, 그리고 분노. 그 때 던져버렸던 그 모든 것들을 하나 둘 씩 꺼내어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바로 산다는 것이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단영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