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음 주의









토마스에게는 아주 오래전 첫사랑이 있었다. 그 첫사랑은 놀랍게도 토마스 또래의 소년이었고, 그 다지 잘생기다고 말할 수는 없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토마스에게 그 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옆으로 다가와 준 사람이었고, 좀처럼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토마스에게는 첫 친구가 되어준 아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소년은 토마스를 토마스라고 부르지 않고 유일하게 ‘토미’라고 부르는 아이이기도 했다. 소년은 검은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토미’라고 부르는 목소리와 저를 바라보는 그 검은 눈동자는 너무나도 다정했기 때문에 토마스는 점점 더 소년을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소년은 소식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고 토마스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 중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소년의 소식은 영 들을 수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 것 마냥. 그리고 토마스가 16살 정도가 되었던 때였던가. 차로 가도 한 시간 혹은 그 이상이나 걸릴 것 같은 곳에서 부모의 시체와 며칠을 지낸 토마스와의 또래 아이에 대한 뉴스로 세간이 시끄러웠더랬다. 뉴스에 나온 소년이나 소년의 가족에 대해서는 자세한 보도를 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뉴스를 보며 소년이 불쌍하네, 어쩌다 저렇게 된 걸까 같은 이야기만을 했었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렇게 나이를 먹었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그는 경찰이 되었고, 여전히 그 소년을 잊지 못했다.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소년을 잊지 못했다. 그 소년의 눈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여자를 보더라도, 남자를 보더라도. 자꾸만 소년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고, 당장에라도 그 소년이 자신과 비슷하게 큰 모습으로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토마스는 종종 상상하고는 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컸을 소년의 모습은. 소년은 어릴 때, 자신보다 좀 더 작았다. 아직도 자신보다 작을까. 아니면 좀 더 커져 있을까. 뚜렷한 이미지는 잡히지 않았다. 토마스는 소년의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 소년은 자신에게 제 이름을 알려주었던가. 토마스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쯤, 호출 전화가 왔다. 근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었다.



“이거 완전 선수야.”

토마스 보다 몇 살 더 많고, 좀 더 선배인 형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쯧쯧. 하고 그는 혀를 몇 번 찼다. 살인범의 살인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깔끔했다. 깔끔하게 그어버리고, 한 번에 보내주고. 그리고 시체를 똑바로 침대에 눕혀놓은 것이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잠들어 버린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깨끗한 주변 현장. 살해당한 사람과의 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없었을까. 탐문을 해봤지만 집 주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가 좋은 인물 이었다. 모두에게 착하고, 다정한 이웃.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뭐?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토마스.”
“그냥. 모두한테 다정한 사람이 진짜 있을 수 있구나 싶어서요.”
“하긴, 사람이라면 뭔가 구린 점 하나 씩은 있기 마련이긴 하지.”

토마스는 제 선배의 말에 그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별 생각 없이 주변을 돌아보다, 곧 어떤 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다 헤진 것 같이 보이는 가죽점퍼를 입고, 짧은 머리카락에 짙은 눈썹. 그리고 무심하고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 그 눈빛과 시선은 어딘가 소년을 닮아 있었다. 토마스는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삼켰다. 곧 그 남자가 웃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웃음이었다.



온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범이 결국 잡혔다. 그는 토마스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남자였고, 토마스는 그를 기억해냈다. 저번에 자신을 보고 웃었던 그 남자. 남자는 선수였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마지막 살인 대상한테 만큼은 그 분노를 다 참지 못하고 뱉어내고 말았다. 온 집안은 살인범과 살해당한 남자의 난투로 인해 난장판 이었고 사방에 피가 튀어 있었다. 남자는 도망쳤고, 살인범은 그 남자를 뒤쫓았다. 남자는 결국 그의 손에 죽었고, 살인범은 순순히 잡혔다. 마치 모든 것을 다 끝낸 것 같이 후련한 표정을 한 채로.


토마스는 남자와 마주한 채로 그 눈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겨우 조회해서 나온 남자의 이름은 ‘민호’라고 했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 속에 있는 그 이름. 그는 어떤 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피해자였던 사람이 지금은 가해자가 되어버린 이 상황 속에 토마스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민호’를 마주한 토마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고,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었다. 아주 긴 침묵. 긴장의 시간이 이어졌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토마스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어차피 그는 이미 양 손목이 포박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남자였지만, 토마스는 남자의 그 시선 하나만으로 그에게 제압당하는 기분 이었다. 마치 그의 손아귀에 놓인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토마스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은 그를 알고 있다. 자신은 이 남자를 알고 있다. 그래, ‘민호’라는 이 젊은 청년을 알고 있다.

결국 하릴 없이 시간이 흘렀고, 토마스는 일어섰다. 철제 의자가 드르륵 소리를 냈다. 민호도 침묵했고, 토마스도 침묵했다. 다소 무의미해 보이는 시선이 마주쳤다. 곧 ‘민호’가 말했다.

“……토미.”

토마스는 제 이름을 듣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을 떠올렸다. 아주 어릴 적부터 ‘토미’라고 불러준 사람은 그 소년 한 명 뿐 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자신의 첫 사랑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년은 살인범이 되어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이 얼마나 모든 것이 교차하는 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