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일단 수량조사 겸 구두예약을 받으면 초인의 힘으로 마감하지 않을까요...? (동공지진)
만약 책이 펑크 날 경우엔... 적어주신 연락처로 연락해드립니다...
고요의 밤
a5 / 30페이지 내외 / 3~4천원 내외 / 전연령가
:: 현대물 AU로 시리어스합니다.
:: 어느 날 부터 눈이 안보이게 된 청년(마틴)과 그런 청년을 상담하게 된 남자(티엔)의 이야기입니다.
“……미스터, 전 이 대화가 녹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녹음을 안 하면 문제가 되나요?”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티엔은 잠시 고민 중인 것 같았다. 마틴은 불안 한 듯, 손을 여전히 꼼지락 거리다 곧 고개를 들었다. 마주한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글쎄요.”
티엔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녹음기를 끄는 것 같았다. 무언가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마틴의 눈은 여전히 아무것도 비추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고개를 든 채로, 그 텅 빈 눈동자가 티엔 정을 마주하고 있는 것 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요.”
“……글쎄요.”
“……상담사 맞아요?”
“그럼 제가 뭔가 물어본다면, 그에 대해서 바로 대답해주실 겁니까?”
티엔의 말에 마틴은 입을 다물었다. 그대로 처음 들어왔던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고개를 숙였다. 티엔은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여전히 꼼지락대는 마틴의 손을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뭔가 억지로 말하려 하지 마십시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말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요?”
“그건 직접 생각해보십시오, 챌피.”
티엔은 그렇게 말했다. 황망한 눈동자가 다시 티엔의 얼굴을 쫓았다. 다급함이나 당혹감이 느껴지는 얼굴에 티엔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다른 상담자들 앞에서는 영 짓지 못할 얼굴이라고, 티엔은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아마 가장 어렵고 큰 숙제가 될 겁니다.” 티엔은 그렇게 덧붙였다. 마틴은 더 이야기 하지 않았다. 황망한 눈동자가 그제야 거두어졌다.
마틴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고요만이 가득한 그 방안에.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밝았지만 그의 방은 어둑어둑했다. 마틴은 힘없이 걸음을 옮겨서는 그대로 침대 위에 미끄러지듯 엎어졌다. 그 남자는 제법 엄격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얼굴도 그런 엄격한 느낌일까. 마틴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 자신의 상담가라며 인사 한 ‘티엔 정’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름으로 들어서는 동양계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 사람일까. 일본? 중국? 한국? 하지만 영어는 제법 잘 구사했다. 목소리는 제법 낮은 톤 이었고, 엄격하게 느껴지는 어조이기도 했다.
“……이게 아마 가장 어렵고 큰 숙제가 될 겁니다…….”
마틴은 오늘 티엔이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괜히 따라 말했다. 남자와 같은 어조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마틴은 그렇게 중얼 거리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뜨나, 감으나 자신이 보는 세계는 똑같았다. 다가오는 세상도 똑같았다.
꿈속의 마틴은 과거에 사귀었던 여자와 같이 있었다. 여자는 마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무어라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마틴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틴은 말 하고 싶었지만, 말도 하지 못했다.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고,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외쳐도, 외쳐도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마틴은 여자에게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여자는 또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들리지도 않았다. 마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렇게까지 깊은 절망을 느껴본 적은 없는데……. 마틴은 그렇게 생각했고, 얼른 이 곳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에서 깬 마틴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지독한 악몽을 꾸고 말았다. 이 악몽은 언제부턴가 계속 이어졌고, 사라지지 않았다. 방안은 조용했고, 시계 침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을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