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네에게 실망했네. 그렇게 말하던 브루스의 표정은 잔뜩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겹겹이 쌓여 있었고, 실망 또한 겹쳐 있었다. 그리고 그 날,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마틴 챌피와 브루스 보이틀러의 사이는 점점 틀어지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만큼, 그렇게 틀어지고야 말았다.
그 뒤에도 마틴은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다. 브루스와 다시 대화를 해보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고, 대화를 해주지 않는 그에게 편지도 썼다. 하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오로지 ‘침묵’이었다. 브루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틴은 그런 침묵이 이어짐에 따라 어느 순간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간이 흘렀고, 그 흐른 시간동안 브루스와 마틴의 사이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어졌다면, 멀어졌지만. 이미 깊게 패여 버린 골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이었다.
어느 새 길거리를 가득 채운 것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이었다. 다소 추위가 풀렸다고는 해도,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마틴은 홀로 덩그러니 벤치에 앉은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이렇게 좋은 생각들만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틴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연인들에게 있어서 좋은 날이라고 했었던가. 자신에게는 그거 이전에 다른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재단의 사무실에서 브루스와 자신 단 둘만이 남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그 불편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나와 버린 게 이런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생일인데,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마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차피 브루스는 자신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혼자 뭘 하고 있나, 챌피.”
“뭐 하긴요, 여유를 즐기죠.”
그렇게 멍하니 있을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난 남자의 말에 마틴은 하하.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했을 뿐 이었다. 그런 마틴의 대답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툭 말을 던졌다.
“도망쳤나보군.”
“……나 댁 진짜 싫은 거 알죠?”
“사실 기를 다루는 게 아니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라고 덧붙이면서 마틴은 어이없음에 웃었다. 유일하게 그 속을 읽을 수 없는 남자는, 종종 이런 식으로 마틴의 속을 파내고는 했다. 어떻게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지. 남자는 서서 가만히 마틴을 바라보다가, 은근슬쩍 그 옆에 앉았다. 그가 옆에 앉자, 마틴은 슬쩍 멀리 떨어져 앉았고 그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지 그저 다시 입을 열었다.
“술이라도 마실 텐가.”
“……내가 왜 티엔이랑 술을 마셔요.”
“술 정도는 사줄 수 있다만. 내 기억이 맞다면, 오늘 챌피 자네의 생일인 것으로 아는데.”
“하하. 별 것도 다 아네요. 됐어요, 별로 술 마시고 싶지도 않고. 그냥 말 상대나 해주세요.”
“나를 별로 안 좋아하지 않던가.”
그의 말에 마틴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브루스와 사이가 좋았던 때였던가, 아니면 틀어지기 바로 직전이었던가. 브루스가 소개시켜 준 이 남자는 아시아 지부의 스카우터로 이름은 ‘티엔 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혀 마음을,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유일한 남자……이기도 했다.
“……알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안 좋아 한다 던지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럼 표현을 바꾸지. 나를 경계하는 걸로.”
그의 말에 마틴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고, 마틴은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어린 아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진짜 행복해보이네요.”
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툭 마틴이 던진 말이었다. 티엔은 뭔가 말을 하려다, 곧 마틴의 표정을 바라보고는 그만두었다. 평소와는 달리 제법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던 청년은 또 다시 말없이 거리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브루스 너무 한 거 같지 않아요? 나는, 그래도 노력 했어요. 브루스와 다시 사이가 좋아지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했다구요.”
마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마틴이 바라보고 있던 거리를 바라보고 있던 티엔이 곧 마틴을 바라보며 그 말에 반박이라도 하는 듯이 툭 말을 던졌다.
“자네가? 내가 보기엔 자네도, 브루스도 서로 노력하지 않는 거 같은데.”
“……뭐요?”
그 말에 발끈한 듯, 마틴이 앉아 있던 벤치에서 일어났다. 살짝 일그러진 표정의 끝은 티엔을 향해 있었고, 티엔은 그런 그의 표정에도 어떤 변화도 없이 그런 그의 표정을 받아치고 있을 뿐 이었다.
“내가 보기엔, 자네도 브루스도 똑같아.”
“…….”
“고집불통.”
그의 말에 마틴은 대답하지 못했다. 티엔은 가만히 앉은 채로, 그의 표정을 살폈고 그러다 곧 자신도 벤치에서 일어나며 입을 다시 열었다.
“……술 마실 텐가.”
“……저 진짜, 티엔 당신 싫어요.”
마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하. 하고 소리 내 웃었을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