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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짧음 / 모든 게 끝났다는 가정 하에 날조 주의








티엔 정이 훌쩍 떠나버린 것은 어떠한 예견도 없던 일이었다. 정말로 갑작스럽게, 아무 말도 없이.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그는 소리 소문 없이 떠나버렸다. 마지막으로 그의 모습을 봤다고 말한 사람은 그가 새벽녘에 간단한 짐만 챙기고 기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티엔은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다.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가 어디로 갔을지 알 것 같은 그의 유일한 제자에게 물어봤을 때, 소년 어깨를 으쓱이며 ‘몰라. 이제 가르칠 건 없다던데.’ 라고만 말했을 뿐 이었다.

남자는 그렇게 없어졌다. 사라져버렸다.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고, 그가 먼저 연락을 해오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티엔 정이 떠나버린 지 7일 정도가 지났다. 재단은 완전히 무너졌고, 그 안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떠났다. 브루스는 마지막 까지 위대한 모험가의 뜻을 함께 하는 자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렸고, 하랑은 회사로 가버린 듯 했다. 마틴 만이 덩그러니 남아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은 채였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회사로 가자니 그간의 일들을 털어 놓을 수 없었고, 브루스를 따라가자니 아직도 그와의 골은 깊기만 했다. 이럴 때, 티엔 정이 있었더라면 무슨 조언을 해줬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 남자라면 별 고민 없이 자신의 제자처럼 회사로 가버렸을까? 아마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회사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만약 그가 지금 다시 돌아온다면 이 사실을 알고 길길이 날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틴은 그렇게 혼자 남았다. 그는 이 평화로움을 지키기 위해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더 이상은 능력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휴식을 취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틴은 그렇게 짐을 챙기고 기차에 올라타면서 문득 남자를 떠올렸다. 그 남자도 자신과 같은 심정으로 기차에 올라탔을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 지금, 그 남자만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쉬고 싶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마틴은 그렇게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중국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말은 전혀 할 줄 몰랐고, 이 나라에서 서역의 말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적었다. 그는 이곳에서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은 여행지에서 시비에 걸리는 것만큼 불쌍한 일도 없을 것이다. 지금 자신처럼. 체격 좋은 남자 몇 명이 마틴 주변에 모여 잔뜩 험악한 표정과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렸다. 마틴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처한 표정으로 손사레만 쳤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마틴의 행동에도 험악한 표정을 풀지 않았고, 마틴은 뒷걸음질도 치지 못한 채 도와줄 사람이 없나 주변을 둘러볼 뿐 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외국인을 위해서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 이래서 생판 모르는 곳으로 함부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왜 그 여행지에서 그 남자가 생각이 나서는. 마틴은 괜히 없는 남자의 탓을 하며 후회했다. 하지만 이렇게 후회해봤자 뭐하겠는가. 마틴은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능력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긴 것 이었는데. 그런 것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모양새에 어이없음에 그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능력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마치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别闹了。”

마틴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에 저절로 고개를 돌렸고, 곧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는 하하. 소리 내며 웃었다. 그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어느 날 떠난 그 남자가.

그 때가 남자가 사라진 지 약 3주 정도가 지난 날 이었다.



티엔의 도움 덕에 그 상황에서 겨우 빠져나온 마틴은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그에게 붙들려 그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집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정말 필요한 물건들만 갖추고 있는 집안은 깔끔하다 못해 허전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고, 티엔은 예전보다 더 말수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에는 어떻게 온 거지.”
“표정 좀 풀고 말해요, 표정 좀. 댁을 따라온 것도 아니고요, 뭔가를 붙인 것도 아니에요. 그냥, 진짜 우연이에요.”
“……흠.”

마틴의 말에 티엔은 제 턱을 가볍게 몇 번 쓸어내렸다. 그런 티엔을 가만히 바라보던 마틴이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어요?”
“……뭐……. 그럴 수도 있지.”

티엔은 그렇게 말하면서 정확한 대답은 피했을 뿐 이었다. 그는 찬장에서 찻잔을 꺼내더니 “그냥 차로 괜찮나.” 라고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고, 마틴은 그제야 그가 좀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잠깐 사이에.

“……재단은 없어졌어요.”
“……그건 예견 된 일이지 않았나.”
“……브루스는 뜻이 맞는 자들과 떠났어요. 하랑은……헬리오스로 가버렸고요.”

작은 탁자 위에 찻잔이 내려놓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말에도 티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침묵이 이어졌고, 조금 느리게 그가 “그렇군.” 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챌피 자네는 혼자 여행이라도 시작했다는 건가?”
“아까 티엔이 한 대답 그대로 돌려줘도 괜찮죠?”
“……뭐?”
“그럴 수도 있다고요.”

마틴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보였다. 그런 그의 말에 티엔은 허. 하고 한 번 혀를 차는 것도 같았고, 숨을 삼키는 것도 같았다. 그러더니 곧 눈을 슬쩍 감은 채로 웃음을 터트렸을 뿐 이었다.

“……근데, 진짜 왜 말없이 떠났어요? ……그것도 갑자기.”
“그게 궁금한가.”
“……그냥, 티엔 답지 않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하던 일을 그런 식으로 버려두고 갈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자네 눈에 난 어떻게 보이는데.”

마틴의 말에 티엔은 대답대신 다소 질문 같이 느껴지는 답을 말했을 뿐 이었다. 그의 말에 마틴은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고, 잠시 침묵이 함께했다. 마틴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맞은편에 앉은 그의 얼굴로 팔을 뻗어서는 그의 머리카락을 슬쩍 쓸어 넘겨봤다. 남자는 그런 행동에도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한 채로 마틴을 바라보고 있었다.

“……되게 지쳐 보이네요.”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그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을 떼며, 마틴이 내뱉은 말에 티엔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대답했다. 그런 그의 말에 마틴은 하하. 하고 웃으면서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어지며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요.”

제 앞에 그렇게 테이블에 엎어진 마틴을 바라보며 티엔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은 지쳐있었다. 모든 싸움은 끝났고, 그 장소에는 둘 뿐 이었다. 티엔은 여전히 엎어진 마틴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저 그 머리를 툭툭하며 다독이듯 쓰다듬었을 뿐 이었다.